“세계금융, IT가 주인공인 새 스토리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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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금융]<1>노벨경제학상 수상 美 실러 교수 현지 인터뷰

실러 교수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세상에서 그에 맞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며 다가올 ‘금융 혁명’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실러 교수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세상에서 그에 맞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며 다가올 ‘금융 혁명’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세계 경제가 좋아지고는 있지만 탐욕과 비(非)이성이 휩쓸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금융이 지금껏 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듯이 앞으로는 ‘좋은 사회(Good Society)’를 만드는 밑거름이 돼야 합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68)는 지난달 말 미국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 예일대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동아일보와 종합편성TV 채널A가 28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최하는 ‘2014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새로운 리스크, 새로운 금융 시대’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실러 교수는 향후 금융시장의 가장 큰 위험은 많은 산업을 대체해가고 있는 정보기술(IT)의 물결에 대응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금융회사들이 IT혁명을 맞이할 만한 인적 구성이나 조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달라진 세상에서 어떻게 수익모델을 만들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 금융시스템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경유착의 이미지가 강하다. 결국 금융규제 시스템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지가 중요한 과제”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금융위기 이후 세계 금융시장은 새로운 좌표를 찾고 있는데….

“난 경제를 ‘스토리(이야기)’로 설명하길 좋아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광기(狂氣)에 휩쓸려 비이성적으로 부동산과 주식에 탐닉하던 시기였다. 지금은 IT가 경제 스토리의 키워드다. 한때 러시아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던 나의 노력들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구글 번역기가 이를 대신해버렸기 때문이다. 금융시장도 새로운 스토리에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 가장 큰 과제라고 본다.”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금융시장과 정책 당국이 찾아야 할 일이지만 요즘 물꼬를 트기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소액모금 펀드) 같은 사례가 IT와 금융이 결합한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사회 공익까지 더하면서 수익을 창출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물론 정책과 규제가 제대로 뒷받침돼야 한다.”

―저금리 시대에 점점 투자할 곳이 줄어들고 있는데….

“요즘 유망 투자처를 찾기 위해 바클레이스은행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가치 대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곳을 봐야 한다. 예를 들면 헬스케어 같은 분야다.”

―미국 부동산시장은 어떤가.

“최근 12개월 동안 미국 주택 가격은 13.2%가 올랐다. 역사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은 증시 상승을 이끈 엔진 역할을 했지만 이는 결국 버블 붕괴로 이어졌다. 최근 제자들과 함께 미국 주택 구입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이들도 서서히 버블을 의식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올 들어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미국 등 세계 부동산 시장이 오르는데 한국만 유독 약세라면 원인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한국이나 글로벌 시장에 미칠 영향은….

“이미 알려진 뉴스는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미국이 경제 회복기를 맞고 있다는 전망이 많은데….

“모든 지표가 긍정적이다. 다만 경제 회복기를 맞는다고 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지금도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금융개혁도 월가의 반발로 지지부진하다.”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인터뷰를 하면서 28일 서울에서 열릴 ‘2014 동아국제금융포럼’ 참석을 기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동아일보에 전달했다.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인터뷰를 하면서 28일 서울에서 열릴 ‘2014 동아국제금융포럼’ 참석을 기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동아일보에 전달했다.
“금융의 미래는 인간화-민주화에 달려” ▼

―한국 금융계에서 ‘삼성’ 같은 글로벌 금융사를 키우려면….

“나에게 각인된 한국의 가장 큰 경쟁력은 교육이다. 이건희라는 기업가가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결국 인재를 뽑아 동기부여를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또 성공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에 의해 모든 것이 이뤄진다.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높아지려면 이런 유형의 인물을 길러내야 한다. 다만 금융 테크닉뿐 아니라 윤리적인 측면이 고루 겸비된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서울이 동북아 금융허브가 될 수 있나.

“최근 중국이 해외자금 유출입 통제를 강화하면서 상하이와 선전 같은 동북아의 신흥 금융허브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좋은 기회다. 세계 최고 금융도시인 뉴욕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언어를 쓰는 한국으로서는 솔직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있고 국제 금융계의 구조와 정서를 이해하는 인재를 길러낸다면 싱가포르 홍콩 중국을 제치고 동북아 금융허브의 중심이 될 수 있다.”

―평소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금융의 기능을 강조해왔다.

“최근 출간한 ‘새로운 금융시대’에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금융사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했다. 한 예가 펀드를 만들고 투자가들을 모집해 비영리 병원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해당 사업에 재투자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또 금융사의 최고경영자(CEO)처럼 과도한 수익을 올리는 부유층들이 이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길을 터주도록 세율 체계를 고칠 것을 제안했다. 금융의 미래는 ‘인간화’와 ‘민주화’에 달려 있기도 하다.”

―많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경제학자가 아닌 사회과학자로 규정했다.

“경제학자들은 강점을 지닌 한 분야에 집중하지만 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다방면에 지식을 가진 사람)가 되고 싶다. 현실과 괴리되면 세상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금융 활동에서도 인간의 심리적 측면을 도외시한 분석은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세계금융#IT#로버트 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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