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發 음모론’ 北이 똑같이 인용… 천안함 때와 판박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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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괴담의 트라이앵글

북한 전문가들은 국방부의 무인기 사건 중간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북한이 14일 “제2의 천안함 사건 날조이며 비방 중상”이라며 반박한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을 부추기는 전형적인 대남전술 패턴이라는 설명이다.

○ 우연인가? 반복되는 음모론 확산 패턴

북한의 “제2의 천안함 사건” 주장은 공교롭게도 좌파 성향의 인터넷 매체인 ‘자주민보’에 7일 오른 기고문의 제목(‘무인기 사건, 제2의 천안함 사건 되나’)과 거의 같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종북 논란을 이유로 법원에 이 매체의 신문등록 취소 심판 청구를 제기한 바 있다. 이 글은 “무인기가 과연 북한이 보낸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11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북한 무인기라며 소동을 벌인 것에 대해 언젠가 누군가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무인기의 배터리에 적힌 서체가 ‘아래아 한글’이라는 점 △북한 무기는 일련번호에 주체 연호를 쓰는데 무인기는 영어로 시작됐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이 역시 ‘공교롭게도’ 자주민보 글의 맥락과 같다.

김어준 씨는 11일 밤 방송(9일 녹화)된 한 인터넷 팟캐스트에서 비슷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 씨는 자신이 진행한 이 방송에서 ‘무인기가 아예 날지 않았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팟캐스트에 출연했던 정 의원은 11일 자신의 트위터에 ‘무인기와 장난감, 닭치고 즐감(즐겁게 감상)’ 등의 글을 올려 이 방송을 홍보했다. 정 의원은 이 방송에서는 기초선거 공천 등 정치권 소식에 대해서만 발언하고 무인기 관련 부분에는 언급하지 않았다.

○ ‘제2의 천안함 사건’이란 프레임 덮어씌우기?

14일 한 인터넷 게시판에는 “북한의 무인기에 대한 의심이 본격화돼 간다. 현재의 무인기 사건은 지난 천안함 사건의 축소판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글이 올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 등에는 “김어준·정청래·CNN, ‘무인기 북한 것 아닌 장난감’”이란 제목의 글이 오르고 리트윗되고 있다.

‘합리적 의혹’으로 포장된 음모론이나 괴담이 ‘좌파 성향의 인터넷 매체→야당 국회의원→비슷한 성향의 인터넷 팟캐스트 및 SNS를 통한 확대재생산’이란 구도로 펴져 나가는 형국이다. 사태를 관망하던 북한은 이런 주장들을 활용해 “사건 날조”라고 공식 반박하는 모양새다.

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 때도 국내 일부 인사가 어뢰에 쓰인 ‘1번’의 존재에 대해 제기한 의혹 등을 그대로 다시 인용한 ‘국방위원회 검열단 진상공개장’을 그해 11월 내놓았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 사회의 내부 논란을 이용해 국론 분열을 확대시키려는 북한의 노림수”라고 말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평시에 무인기라는 비대칭전력을 기습적으로 사용한 것 자체가 직접적인 대남 공격이나 테러보다 (남남갈등 유발 같은) 정치적 의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조작설과 음모론에 대해 정부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군사안보적 사건에 걸맞게 외부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철저히 보안을 지키며 면밀히 조사한 뒤 그 결과를 발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무인기의 촬영 사진이 특정 언론에 게재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조사 결과가 흘러나오면서 ‘정부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낳게 했다는 얘기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정성택 기자
#음모론#북한 무인기#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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