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애니-영화가 책을 만났을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먼지아이/정유미 글·그림/228쪽·2만9000원·컬쳐/플랫폼
◇지슬/김금숙 그림/264쪽·1만4900원·서해문집

제주도4·3사건을 형상화한 그래픽 노블 ‘지슬’의 한 장면. 만화는 움직이는 원작 영화의 장면 장면을 붓과 먹을 써서 유려한 수묵화로 포착해냈다. 서해문집 제공
제주도4·3사건을 형상화한 그래픽 노블 ‘지슬’의 한 장면. 만화는 움직이는 원작 영화의 장면 장면을 붓과 먹을 써서 유려한 수묵화로 포착해냈다. 서해문집 제공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종이에 옮긴 두 권의 책이 나왔다. 두 작품 모두 프랑스에서 역량을 검증받은 작가의 작품이다.

정유미 작가는 2009년 자신이 제작한 동명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그림책 ‘먼지아이’로 옮겼다. 애니메이션은 2009년 프랑스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그는 애니메이션 그림을 골라 연필로 다시 그렸다. 독서실에서 그리다가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때문에 쫓겨나기도 했다. 6개월 동안 그린 5000여 장의 그림을 골라 만든 책은 2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볼로냐도서전 최고상인 라가치상 뉴호라이즌 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 그림 작가가 라가치상 대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먼지아이’는 주인공 유진이 추운 겨울 새벽에 일어나 자취방 청소를 하며 시작된다. 그는 침대 밑에서 자기와 얼굴이 똑 닮은 먼지아이를 만난다. 성냥갑 안으로 몸을 숨기는 먼지아이를 성냥갑 채로 손에 꽉 쥐고 버렸지만 책상 위에서, 부엌에서, 화장실 수챗구멍에서 먼지아이는 계속 나타난다. 먼지아이는 유진이 먹으려고 차린 쌀밥 위에 앉아 밥알을 쥐고 먹기까지 한다. 유진이 먼지아이를 숟가락으로 퍼내 버릴까 하다가 밥 한 공기를 더 차려 함께 먹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줄거리만 옮기니 조금 싱겁지만 그림을 꼭꼭 씹어 보면 맛이 있다. 애니메이션의 실감 나는 청소 소리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컷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특히 의인화된 먼지아이가 유진이 지켜보자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숨기고, 닦이거나 씻겨나갈 때 그 멍한 듯 슬픈 표정이 정말 사랑스럽다. 작가는 “먼지는 우리가 청소해도 시간이 지나면 쌓이는 물질이다. 사람도 역시 자기의 모습에서 끊임없이 부인하고 싶은 모습,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들을 발견하는 점에서 닮았다”고 설명했다.

‘지슬’은 제주도4·3항쟁을 다룬 동명의 영화(오멸 감독)를 그래픽 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으로 문학적 성격이 강함)로 옮겼다. 영화는 국내 독립영화 사상 최다 관객 동원을 기록하며 선댄스영화제 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그래픽 노블로 옮기는 작업은 자전적 만화 ‘아버지의 노래’로 프랑스 ‘문화계 저널리스트들이 뽑은 언론상’을 수상한 김금숙 작가가 맡았다. 김 작가는 영화가 보여준 흑백의 미학을 붓과 먹을 이용한 수묵화로 확장했다. 수묵화의 흑백 대비 속에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학살당한 제주민의 아픔이 더 묵직하게 전해진다.

여기에 만화적 상상력도 더했다. 사랑하는 순덕이 국군 손에 죽은 사실을 확인한 만철이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갈 때 그 산이 어느새 순덕이가 돼 있다. 애틋한 추억 회상 장면도 잠시 다음 장을 넘기니 양쪽 페이지 모두 시커먼 먹지로 만철의 먹먹한 심정을 담아냈다.

책 vs 책 코너가 영상 vs 책의 대결이 됐다. 지슬의 추천사를 쓴 박재동 화백의 말을 빌려본다. “책은 쉽게 다시 펴 볼 수 있고 또 여기저기 마음대로 펼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보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지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애니메이션#영화#먼지아이#지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