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람은 마땅히 해야 할일”… 독립운동사건 100여건 변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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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 50주기… 동아일보에 남아있는 발자취

《 “국가심리(國家心理)로 보면 죄라 하겠으나 민족심리로 보면 죄가 아니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오. 만약 현재 상태를 바꾸어 일본 사람이 조선 사람의 상태에 있다면 일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1923년 8월 13일자 동아일보 3면·의열단 사건 공판 관련 기사) 》     
      

경무대(옛 청와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왼쪽)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가인 김병로선생(위사진). 가인은 사법권 독립 문제로 때때로 이 전 대통령과 마찰을 빚을 때마다 당당한 자세로 맞섰다. 아래 사진은 변호사들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오른쪽).대법원 제공
경무대(옛 청와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왼쪽)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가인 김병로선생(위사진). 가인은 사법권 독립 문제로 때때로 이 전 대통령과 마찰을 빚을 때마다 당당한 자세로 맞섰다. 아래 사진은 변호사들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오른쪽).대법원 제공
움푹한 눈과 두드러진 광대뼈, 쇳소리 같은 쩌렁쩌렁한 음성이 법정에 울렸다. 두루마기 차림의 한복 위에 검은 법복을 걸친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1887∼1964)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1948년 8월∼1957년 12월)을 지낸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무료 변호를 도맡았다.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 의열단 등 100여 건의 사건을 변론하면서 도산(島山) 안창호, 몽양(夢陽) 여운형, 박헌영, 김상옥 등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동아일보에는 1920, 30년대 가인이 신의주와 평양 등 전국 법원으로 출장 다닌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방청석이 가득 찼던 공판 기사엔 “(가인의) 조리 있고, 힘 있고, 열렬한 변론이 있었다”라는 문장이 빠지지 않았다. 특히 백두산 화전민까지 찾아가 핍박받던 동포들의 현실을 지켜본 뒤 법정에서 이들의 무고함을 역설했다. 그는 독립운동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비공개 대신 공개 재판을 관철했고, 한 법정에선 독립투사 15명의 수갑을 풀고 재판을 진행할 것을 주장했다.

1948년 초대 대법원장에 오른 뒤 9년 4개월의 재임 기간에 그는 때로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맞서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끝까지 지켜 냈다. 1953년 10월 ‘법관의 도’라는 그의 강의 내용은 오늘날 사법부와 법관의 권위 추락과 맞물려 더욱 값진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명예 실추는 법관 전체의 명예 실추”라며 △사람으로부터 의심을 받지 말 것 △음주를 근신할 것 △마작과 화투 같은 유희에 빠지지 말 것 등을 강조했다.

대법원장 자리에서 퇴임하기 8개월 전인 1957년 4월 14일자 동아일보 ‘가인의 변’을 통해 그는 ‘소석(小石)’이던 아호를 ‘가인’으로 바꾼 이유를 직접 설명했다. “‘심소(心小) 신소(身小)하되 적어도 돌같이 강해야 한다’는 뜻에서 ‘소석’으로 정했는데, 절망적인 민족의 장래와 현실을 뼈저리게 느껴 독립을 희구하는 마음과 현실을 개탄하는 뜻에서 (거리의 사람이라는 뜻의) ‘가인’으로 바꿨다.” 광복 이후에도 분단을 슬퍼하며 “땅이 두 동강 난 채 나라의 경제는 여위어만 가고 있다”며 가인을 버리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50주기 추념식이 13일 오전 대법원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이용훈 윤관 전 대법원장,차한성 법원 행정처장,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양승태 대법원장, 이인복 대법관 겸 중앙선거관리위원장,황찬현 감사원장,황교안 법무부 장관.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50주기 추념식이 13일 오전 대법원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이용훈 윤관 전 대법원장,차한성 법원 행정처장,박영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양승태 대법원장, 이인복 대법관 겸 중앙선거관리위원장,황찬현 감사원장,황교안 법무부 장관.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가인 김병로 선생의 서세(逝世·별세의 높임말) 50주기를 기념해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1층 대강당에서 추념식이 열렸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념사에서 “가인이 초대 대법원장이 되었다는 것은 선생 개인의 영광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 사법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 크나큰 행운이자 축복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꼭 50년 전 동아일보는 그를 애도하며 “길이 만인의 사표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가인은 동아일보 창업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고하 송진우 선생과 일본 유학 시절 학우회를 결성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고, 오늘날의 법률 고문에 해당하는 동아일보 검사역을 지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가인 김병로#초대 대법원장#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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