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vs 민영화 클릭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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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반대하면 누르세요”… 온라인 좌우 이념대립 2차전

‘민영화’를 게시글 비추천 아이콘으로 쓰고 있는 진보 성향의 일간워스트저장소(위쪽)와 ‘국정원을 지켜달라’는 메시지를 정면에 싣고 운영 중인 보수 성향의 수컷닷컴 메인 화면. 상반되는 이념을 지향하는 두 사이트는 철도 파업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논란 등으로 온라인 이념 갈등이 심화된 지난해 12월 말 나란히 생겼다. 일간워스트저장소·수컷닷컴 캡처
‘민영화’를 게시글 비추천 아이콘으로 쓰고 있는 진보 성향의 일간워스트저장소(위쪽)와 ‘국정원을 지켜달라’는 메시지를 정면에 싣고 운영 중인 보수 성향의 수컷닷컴 메인 화면. 상반되는 이념을 지향하는 두 사이트는 철도 파업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논란 등으로 온라인 이념 갈등이 심화된 지난해 12월 말 나란히 생겼다. 일간워스트저장소·수컷닷컴 캡처
보수논객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지난해 12월 23일 인터넷 커뮤니티 ‘수컷닷컴’을 개설했다. 수컷닷컴은 ‘남자들의 놀이터’를 자처하며 ‘국정원을 지키자’는 식으로 보수적 가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이트로 서비스 개시 후 한때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일간워스트저장소’(일워)라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등장했다. 강경우파 누리꾼의 집합소로 유명해진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반발해 진보좌파를 표방하는 사이트다. 일베가 게시글을 비추천하는 용어로 ‘민주화’를 쓰는 것에 빗대 이곳은 ‘민영화’를 비추천 용어로 쓴다. 2일 현재 게시글이 2만 건에 이르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지난해 12월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폭발한 ‘제2차 좌우 이념 대결’이 한창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때 벌어진 제1차 온라인 좌우 대결은 진보 진영의 절대적 우세 속에 소수의 젊은 온라인 보수가 도전장을 던지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에서 보수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좌우 양 진영의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는 양상이다.

수컷닷컴처럼 보수적 정치색을 표방하는 사이트가 인기를 끄는 건 그만큼 온라인에서 젊은 보수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다. 수컷닷컴 측은 개설 이후 평균 일일 방문자가 약 20만 명이라고 밝혔다.

애초 온라인 보수는 일베를 구심점으로 삼아왔지만, 대선 이후 일부 이용자의 극단적 행위(전직 대통령 비하 표현, 연예인이나 인기인 모독)로 부정적 인식이 강해지면서 일부 보수 누리꾼들은 새로운 공간을 갈구해 왔다. 대학생 신모 씨(25)는 “나는 일베 이용자가 아닌데도 우파적 주장을 하면 ‘일베충’(일베 하는 벌레라는 의미로 일베 사이트 이용자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는 비난만 들어 정치 현안에 대해 입을 닫은 지 오래됐다”며 “보수적 주장이 일베라는 낙인 없이 다뤄질 수 있는 장(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보수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등장한 것은 이런 젊은 보수층의 요구를 파고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수컷닷컴의 등장으로 일베를 단일 창구로 삼으며 응집력을 발휘해온 젊은 보수의 여론 형성력이 분산돼 힘이 약해질 거란 우려도 공존한다.

수컷닷컴이나 일워처럼 노골적인 정치색을 띠는 커뮤니티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좌우 갈등을 부추기는 역기능을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례로 수컷닷컴에는 ‘대한민국에는 진보는 없다. 종북좌빨만 있을 뿐’이라는 식의 극단적 주장이 올라오고 일워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닭’에 비유해 비난하며 모든 문장의 종결어미를 ‘∼한닭’으로 끝내도록 권하고 있다. 극단적인 표현을 총동원해 이념 정쟁을 한껏 자극하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인터넷 공간이 공론의 장이라기보다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의 극단적인 주장만 펼치는 곳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자신과 반대되는 내용에 대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맹목적인 비난을 퍼붓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온라인 공간의 여론은 이용자 대부분이 젊은층이라 진보적인 목소리가 더 호응을 얻어 왔다. 이 때문에 현실 여론과의 괴리감이 있었는데 온라인 우파의 등장으로 이 간극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는 게 사실이다. 온라인상 보수와 진보의 세력 균형이 이뤄지면서 일방적 주장을 담은 음모론이나 마타도어(흑색선전)가 반대 진영의 적극적인 검증으로 예전만큼 맹위를 떨치지는 못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최근 “철도 민영화를 하면 요금이 5, 6배 폭등한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에 대해 온라인 공간에서 치열한 ‘팩트(사실 확인) 싸움’이 펼쳐지기도 했다.

온라인 전문가들은 최근 젊은 우파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건 북한의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하루에 200만 명이 방문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를 10년 이상 운영해온 김유식 대표는 “온라인의 젊은 보수는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등을 경험하면서 북한이 실질적 위협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보수적 가치인 안보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권오혁 기자
#수컷닷컴#일간워스트저장소#민주화#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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