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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지금 SNS에서는]“나이, 꼭꼭 씹어서 드세요”

입력 2014-01-03 03:00업데이트 2014-01-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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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하고 연필은 친구입니다. 이 꼭지를 읽는 분들이라면 왜 그런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나면 연필로 감았다는 것 기억하고 계실 테니까요. 이렇게 그 시절을 살아봤어야 알 수 있는 것을 물어보는 ‘나이 테스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세대를 조금 더 낮출까요. 다이얼 두 개를 돌려 그림을 그리는 ‘매직스크린(영문명 Etch a Sketch)’도 나이 테스트에 자주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1990년대를 이야기한다면 휴대용 게임기 ‘다마고치’를 빼놓을 수 없죠. 반짝 인기를 끌었던 연예인 알아맞히기도 나이 테스트의 단골 소재입니다.

TV에서는 ‘응답하라 1994’가 유행하고, SNS에서는 이렇게 추억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옛날이 참 좋았다”라고 믿는 게 인간 본능인지 모르겠습니다. 물질문명만 놓고 보면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겠지만, 이상하게도 새로운 편리함은 꼭 새로운 불편함을 낳습니다. 똑똑한 휴대전화(스마트폰)는 사용자를 참 멍청한 인간으로 만듭니다. 할머니는 페이스북이 알려주지 않아도 손자 생일을 절대 잊지 않으셨지만, 요즘 저는 구글 캘린더가 없으면 제 앞가림조차 못합니다.

물건이 이런데 사람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남자한테 참 좋은데 말로 할 수 없다”는 광고로 유명해진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이웃끼리 저녁 한 끼 하자”고 방(榜)을 붙였더니 65명이나 참석했다는 소식이 가슴을 울리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예전’은 정말 그렇게 좋았을까요.

동화작가 김영희 선생님은 1979년 10월 17일자 동아일보에 “우리는 그전보다 훨씬 잘살고 있다고 하는데 운동회는 왜 이리 가난해졌을까. 6·25의 피란살이를 치른 가난했던 옛 부모들도 거대하고 찬란한 운동회를 만들었다. 무엇이, 그 무엇이 꿈의 운동회를 날개 순이 생기지도 못하고 쪼글쪼글 마르게 했을까”라고 썼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게 해결됐을까요. 1974년 12월 23일자 경향신문은 “세계 어느 나라든 고졸 정도가 알맞은 직업인 스튜어디스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학사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형편이고 대졸 경찰, 9급 공무원, 운전사도 흔하게 (됐다)”라며 “대졸자들조차 취업의 길이 막연한 상태에서 미처 고졸자까지 사회나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이 지금의 실태다. 오늘의 사회적 모순을 내일에까지 연장시키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범하지 말아야겠다”고 당부했답니다.

대학 등록금에 대한 부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1965년 2월 6일자 동아일보 ‘횡설수설’은 “갈수록 격심해가는 입학난과 등록금 과중은 우리나라의 가장 ‘부끄러운 자랑거리’가 돼 있다. 그 때문에 해마다 얼마나 많은 비극이 일어나는가는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지는 중대한 사회문제”라며 “이 땅에서 생(生)을 받은 것이 불행하다고 탄식의 눈물을 흘리는 어버이까지도 생기는 현상”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머릿속 기억과 신문 속 기록이 이렇게 차이 나는 건 똑같은 시간을 아이와 어른으로 동시에 살아볼 수 없어서가 아닐까요. 아무리 철이 일찍 든 아이라고 해도 한 번에 전셋돈을 몇억 원씩 올려줘야 하는 생활의 무게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옛날이 아니라 자기가 어리고 젊을 때가 좋았던 거겠죠.

한국말로는 “나이를 먹는다”고 말합니다. 나이도 먹다 보면 체할 수도 있는 겁니다. 게다가 나이를 먹지 않으려 버티다 보면 금세 새로운 나이가 불쑥 눈앞에 나타나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체하지 않도록 나이도 꼭꼭 씹어서 먹어야겠습니다.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의 말이 참일 거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아직 우리가 살지 않은 날들이다.”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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