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철회 이후]낙하산 앉은 자리엔 개혁 싹 못틔워… 악습 고리 끊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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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이대로는 안된다]<2>부실의 뿌리부터 뽑자


“지금까지 3번 정도 들어갔는데, 매번 기관장은 이미 낙점(落點)된 상태였어요. 심지어 위원들도 (위에서) 누구를 원하는지 물어보고 뽑아 주는 분위기였죠.”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에 위원 자격으로 참여했던 사립대 교수 A 씨. 그는 최근 공공기관장 선임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취재팀에 이렇게 털어놨다. 그는 “절차는 번지르르한데 실제 내용은 군사정권 때 그대로다”며 “쓸데없이 공고 내고, 위원들 여비 주고, ‘들러리’ 후보들 앉히고,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워 추진 중이지만 공공기관의 부실을 원천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되풀이되는 ‘무자격 낙하산 인사’를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공기업 일선에서 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할 기관장의 정통성이 흔들리면 개혁을 밀어붙이기에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외부의 능력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 시작된 기관장 공모제도 뽑을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는 ‘요식 행위’가 되기 일쑤다.

○ ‘낙하산 악습’ 현 정권에서도 되풀이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의 임명은 공기업 특유의 독점 구조와 함께 공공부문 부실 경영의 중요한 고리를 형성해 왔다. 기관장 자리를 ‘전리품’으로 받고 들어온 낙하산들은 노조에 약점이 잡혀 결국 각종 복리후생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기관장은 임명 과정에서 최대한 잡음을 줄일 수 있고, 노조는 이득을 챙길 수 있으니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또 정권은 공기업에 각종 정부 사업을 떠넘기고, 기관장은 사업 타당성을 보기 전에 자기를 뽑아 준 정권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보답하게 된다. 낙하산 인사가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과다 부채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 정부도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잘 알고 있었다. 정권 초부터 이런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사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가 기관장 임명 기준의 하나로 ‘국정철학’을 강조한 것을 계기로 낙하산 근절에 대한 정권 차원의 의지도 시간이 갈수록 흐릿해졌다.

이후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 김학송 도로공사 사장, 김성회 지역난방공사 사장, 현명관 마사회 회장 등 전문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인사들이 줄줄이 기관장 자리를 차지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도 낙하산 인사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낙하산이든, 아니든 간에 방만 경영을 고치지 못하는 기관장은 물러나게 할 것”이라며 “실적으로 판단하면 된다”라고 해명했다.

‘무늬만 공모제’라고 비판받는 기관장 공모제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공모제의 제도 자체는 완벽한데 ‘알아서 기는’ 문화 때문에 실행 과정에서 100% 무력화되고 있다”며 “요즘에는 임추위원들이 아예 ‘청와대가 원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고 시작한다”라고 전했다. 임원 추천 과정에 참여하는 또 다른 교수는 “요즘도 임추위에 불려 가면 주무 부처 간부에게서 ‘교수님은 여기서 도장만 찍으시면 됩니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라고 털어놨다. 임추위가 낙하산 외의 후보를 추천하며 ‘저항’하면 재공모를 지시하는 구태도 여전하다.

지방 공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자치단체 산하 공기업 기관장들은 대체로 절반 이상이 해당 시의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형식적으로는 공모를 하지만 내정자가 있고, 이를 모르는 들러리 후보들이 지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결국 단체장에게 과잉 충성을 하는 공무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관장 선임 과정 투명하게 공개해야”

전문가들은 낙하산 인사와 허울뿐인 공모제의 문제를 풀려면 인사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창원 교수는 “임추위부터 청와대까지 기관장 선임에 개입한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하면 지금처럼 요식적인 후보 검증은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라며 “일단 경영평가에서 나쁜 성적을 받는 기관장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의 기준과 허용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관 내부 출신이 아니라고 해서 무조건 낙하산 인사로 매도하면 선택 가능한 인재 풀이 너무 좁아진다는 이유에서다. 곽채기 동국대 교수는 “출신이 어디냐를 떠나 해당 공기업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만 있으면 된다”며 “용인될 수 있는 낙하산의 기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결국 공기업도 민간과 경쟁을 시켜 생산성을 높여야만 낙하산 문제도 자연스레 해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유재동 jarrett@donga.com / 정임수 기자
#철도파업 철회#공공기관#낙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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