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老작가, 궁핍한 삶에서 예술을 길어 올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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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포베라’ 거장 伊 야니스 쿠넬리스
대구 우손갤러리서 국내 첫 개인전

이탈리아의 예술운동 ‘아르테 포베라’ 작가 야니스 쿠넬리스의 국내 첫 개인전이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3t의 쌀을 자루에 담아 놓은 대형 설치작품 앞에 자리한 작가. 그는 경북 청도에 3주간 머물며 한국에서 받은 문화적 영감을 신작으로 선보였다. 대구=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이탈리아의 예술운동 ‘아르테 포베라’ 작가 야니스 쿠넬리스의 국내 첫 개인전이 대구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3t의 쌀을 자루에 담아 놓은 대형 설치작품 앞에 자리한 작가. 그는 경북 청도에 3주간 머물며 한국에서 받은 문화적 영감을 신작으로 선보였다. 대구=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1969년 이탈리아 로마의 한 갤러리에 열두 마리의 살아 있는 말이 등장했다. 팔린 그림에 빨간 딱지를 붙이는 관습을 거부한 ‘작품’으로 데이미언 허스트 등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시장을 마구간으로 바꾼 작가는 그리스 태생으로 이탈리아에 정착한 야니스 쿠넬리스(77). 미술사에선 그 이름을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전위적 예술운동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중요 인물로 기록한다. ‘가난한 미술’이란 뜻의 ‘아르테 포베라’는 1967년 제노아에서 큐레이터 제르마노 첼란트가 기획한 그룹전을 통해 첫 단추를 끼웠다. 쿠넬리스와 알리기에리 보에티 등 작가들은 헝겊 나뭇가지 철판 등 일상 재료를 활용해 반(反)상업적 미술을 표방하면서 예술의 영역을 넓혔다.

쿠넬리스의 국내 첫 개인전이 대구 중구 봉산동 우손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는 전시 현장에서 구한 재료로 작업하는 것을 고집한다. 이번에도 3주간 경북 청도의 한옥집 온돌방에서 자면서 한국에서 받은 문화적 영감을 소재로 신작을 선보였다. 숯 한복 재봉틀 철판 등 자연과 산업의 재료, 생활용품이 결합한 작업이다. 내년 2월 18일까지. 053-427-7736

21일 오프닝에 앞서 만난 작가의 곁엔 내년에 그의 개인전을 여는 프랑스 생테티엔미술관 롤랑 헤기 관장,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가르친 제자 김창겸, 정승운 씨가 함께했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작가에게 현장 작업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아르테 포베라가 액자에 갇힌 그림에서 탈출할 계기를 주었듯, 틀에 갇힌 전시의 개념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여행이야말로 그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에 죽을 때까지 나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늙었다고 해도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니….”

○ 한국 문화와 통하다

그는 ‘아르테 포베라’에 머물지 않고 상반된 재료가 공생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했다. 이번에도 한복과 철판 등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것, 이질적 재료의 융합을 보여준다. 낯선 환경, 다른 문화를 소재로 하면서 그 안에 잠재된 보편적 공감대의 연결고리를 찾아낸 작업이다.

“한국에 왔으니 이곳 재료를 사용할 뿐 굳이 한국적인 것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볼 수 없지만 경험과 냄새로 새로운 환경을 느낀다. 청도에서 추수를 끝낸 주변 풍경을 보면서 한국이 밀의 나라가 아닌 쌀의 문화란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 느낌은 3t의 쌀로 완성한 설치작품으로 태어났다. 나락을 담은 포대 위에 H빔이 얹혀 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기하학적 철제 빔과 비정형적인 포대, 농촌과 도시가 대조를 이루며 삶과 예술, 자연과 문명 사이의 경계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휴머니스트로서 인간의 삶 속에서 찾은 무게를 이야기한다. 이탈리아 사람도 한국 사람도 숨을 쉬는, 같은 인간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다가서는 데 뭐가 그리 다른 점이 있겠는가. 전통과 문화엔 다른 점이 있겠지만 인간 자체로서의 이질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인간적 가치를 믿는다

낡은 검은색 코트를 얼기설기 이어 철판에 부착한 작업은 작가를 대표하는 작업으로 가난한 인간들의 삶을 상징한다. 그는 전쟁에 패한 이탈리아에 살면서 마이너리티의 입장에서 승자의 역사, 사회, 사람들에 대해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힘을 길렀다고 말한다. 돈을 좇기보다 삶의 본질을 생각하는 예술에 매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작품 가격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자 정치적인 것이다. 제프 쿤스가 생존 작가 중 최고가를 받는다고 호들갑 떨 이유는 없다. 그가 은행에서 태어난 작가라면 고흐는 감자 캐는 사람들에게서 태어난 작가다. 난 시장을 믿지 않는다. 말과 옷, 석탄처럼 인간적인 가치, 삶에서 나온 것을 믿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빈곤함이다. 경제적인 면이든 아니든 인간의 삶 속에서 빈곤함을 볼 수 있는 예민함과 섬세함, 그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대구=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야니스 쿠넬리스#아르테 포베라#대구 우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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