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심층 포커스]시진핑 체제 1년… 中 어디로 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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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좌향좌, 경제는 우향우… 좌우파 모두 “헷갈려”

올해 6월 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아기곰 푸’의 캐릭터로 등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린 정상회담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잔디밭을 걷는 시 주석을 보고 중국인들이 아기곰을 그린 것이다. 그만큼 친근한 이미지가 어울렸다.

시 주석은 역대 공산당 지도자들과 달리 국민 곁으로 서슴없이 다가간다.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기도 하고 바짓가랑이도 걷어 올린다. 지진 피해 지역에서는 꼬마의 뺨에 입을 맞췄고 쓰러져 가는 시골집 침상에 걸터앉아 농민과 농가 음식을 함께 먹었다. 이런 행보에서 벼룩이 득실대던 동굴에서 시골 농민과 어울리던 젊은 시절 시진핑의 모습을 떠올리는 중국인이 많다.

그런데 공산당의 새로운 일인자는 요즘 “호랑이(부패한 고위 관리)든 파리든 다 때려잡겠다”며 서슬 푸른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공산당은 형식주의 관료주의 향락주의 사치풍조 등 4대 풍조라는 묵은 때 벗기기에 한창이다.

이달로 시 주석은 집권 1주년을 맞는다. 취임 전 그는 온화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면서 기개가 넘치고 배짱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면모와 행보로 통치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는 국민 13억8500만 명을 어디로 인도할까.
천하를 한 손에 쥔 지도자

시 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 이래 가장 짧은 시간에 당(黨) 정(政) 군(軍)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그의 집권 직후 가장 주목받은 인물들은 전임자 후진타오(胡錦濤)와 같은 원로들이었다. 상왕(上王)이나 태상왕(太上王) 등으로 불리던 원로들은 공산당 내 복잡한 파벌 간의 균형추 역할을 하며 권력의 막후에서 입김을 넣어 왔다. 여러 파벌과 두루 관계가 좋았던 시 주석도 결국은 원로들에게 휘둘리는 신세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예측은 빗나갔다. 요즘 중국 관영 언론은 과거처럼 총서기 다음으로 전임자를 호명하지 않는다. 시 주석을 첫 번째로 해서 현직 상무위원들을 권력 서열대로 모두 호명한 뒤 전임자들인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의 이름이 나온다. 현직자 우선이 명확해진 것이다.

사실 시 주석이 통치의 최대 장애물을 상대적으로 쉽게 넘은 데는 후 전 주석의 ‘희생’이 컸다. 후 전 주석은 지난해 11월 18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에게 총서기직을 이양하면서 전임자 장 전 주석과 달리 군권(軍權)인 당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까지 함께 넘겼다. 이 같은 권력 이양에 ‘뤄투이(裸退·벌거벗은 퇴진)’라는 명칭도 붙었다. 재임 기간 내내 사사건건 훈수를 두던 장 전 주석을 향해 후 주석이 ‘내가 완전히 물러날 테니 당신도 이제 자중하라’는 경고를 던졌다는 의미로도 해석됐다.

후 전 주석은 올해 3월 퇴임한 후 한 차례도 공개 석상에 나오지 않았다. 원로 정치의 대표 격인 장 전 주석의 공개 활동도 크게 줄었다. 이제는 불가침 영역이던 상무위원 출신으로 사실상 ‘원로’로 분류되는 거물에 대한 조사설도 돈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변화다.

상무위원 각자가 같은 투표권이 있다는 공산당 집단지도체제의 정점인 상무위원회에서도 시 주석의 권위는 독보적인 듯하다. 관영 매체의 보도에서 시 주석의 보도 비중은 압도적이다.

일당 독재 국가인 중국에서는 요즘도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한 마오쩌둥의 말이 통한다. 최고 권력은 당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에도 혁명군인 집안에서 자란 시 주석이 군권을 확고하게 거머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까지 인민해방군 최고 계급인 상장(上將)을 7명이나 배출했다. 230만 명으로 세계 최대의 상비군인 인민해방군에 상장은 31명이다. 중앙군사위 주석이 되자마자 전략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 사령원 웨이펑허(魏鳳和)를 상장으로 진급시켰다. 통상 당 중앙군사위 주석이 되고 이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다시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을 겸임하고 나서야 군 인사에 손을 대는 게 관례였는데 시 주석은 이런 관례도 깼다.

최근 중앙군사위는 시 주석의 재가를 받고 전국 군을 감찰하는 ‘순시팀’을 신설해 정풍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 주석에게 장악된 군부는 절대 충성을 외치고 있다.
갈지(之)자 정치 노선

안정적 권력 기반 때문인지 그는 요즘 대외 정책에서 자신감을 서슴없이 내비친다. 시 주석은 더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일본과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에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미국을 향해 “양국은 태평양만큼 넓은 합작 공간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정의 방향성은 나날이 모호해지고 있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보수파(좌파)도, 시장경제 확대와 법치 등을 주장하는 개혁파(우파)도 시 주석의 국정 방향을 두고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든다.

그는 지난해 총서기 취임 이후 첫 지방 시찰을 파격적으로 진행했다. 전임자들과 달리 허베이(河北) 성 스자좡(石家庄) 시 시바이포(西柏坡)를 첫 시찰지로 택하지 않았다. 시바이포는 마오쩌둥이 1949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을 본토에서 몰아낸 뒤 베이징에 입성하기 직전에 마지막 농촌지휘소로 삼았던 공산당의 성지다. 신임 총서기들은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이곳을 찾아 공산당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에 대한 계승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시 총서기는 광둥(廣東) 성 선전(深(수,천)) 시를 찾았다. 개혁 개방 1번지인 선전에서 덩샤오핑(鄧小平) 동상에 헌화하고 허리를 굽혀 절했다. 이 지방시찰은 20년 전 덩샤오핑의 전례를 본뜬 것이다. 덩샤오핑이 딸을 데리고 갔듯이 시 주석도 딸과 동행했다.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를 도입한 덩샤오핑 노선을 따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국에서 보수파는 마오쩌둥을 찬양하고 계획경제를 강조한다. 개혁파는 마오쩌둥의 과오를 지적하고 시장경제를 강조한다.

올해 1월 시 주석은 “권력을 제도의 울타리 안에 넣어야 한다”고 말해 다시 한번 개혁파의 갈채를 이끌어 냈다. 마오쩌둥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강단 있는 지도자가 탄생했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묘하게 흘렀다.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4월 중국 사회에 횡행하는 7개의 불순한 조류를 뿌리 뽑자는 문건을 비밀 배포한 게 8월 알려졌다. 문건은 △서구적 입헌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 홍보 △언론 자유와 시민 참여 같은 서구적 영향을 받은 관념 △지나치게 친시장적인 신자유주의 △당의 과거 실책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비평 등을 불순한 조류로 꼽았다. 또 중국에 적대적인 서구 세력과 반체제 인사들이 공직자 재산 공개를 요구하고 인터넷을 통해 부정부패, 언론 통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들을 이슈로 만들면서 끊임없이 이데올로기 영역에 침투한다고도 비판했다.

대표적 관영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입헌 정치와 시민사회를 맹렬하게 비판했고 사법기관들은 사회 불만 세력에 대한 총공격에 나섰다. 비판적인 인터넷 평론가들이 체포되고 유언비어 척결이라는 미명 아래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정책이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올해 7월 시 주석은 시바이보를 방문해 “홍색 강산(공산당이 일군 중국의 땅)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파에게는 일격을, 보수파에게는 선물을 안긴 것이다.

그러면서도 각종 무역장벽을 대폭 개방한 상하이자유무역지대를 출범시켰다. 이달 9일 개막하는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는 경제 부문에서 전면적인 개혁 심화를 논의한다. 이런 행보를 두고 ‘정치는 좌향좌, 경제는 우향우’라는 ‘정좌경우(政左經右)’라는 신조어가 나온다.
개혁파 원로의 아들에 거는 기대

올 6월 지진이 일어났던 중국 쓰촨 성 루산 현을 찾
아 어린이 볼에 입을 맞추고 있는 시진핑 주석.
사진 출처 신화왕
올 6월 지진이 일어났던 중국 쓰촨 성 루산 현을 찾 아 어린이 볼에 입을 맞추고 있는 시진핑 주석. 사진 출처 신화왕
시 주석이 좌우파 노선 중에 좋은 것만 고르다가 얼마 못 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개혁파는 아직도 그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 무엇보다 개혁파인 시중쉰(習仲勳·1913∼2002) 전 부총리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부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말했다. 그의 아버지 시 전 부총리도 맏아들인 시 주석에게 “‘아무리 높은 관직을 맡더라도 근면성실하게 인민을 위해 노력하라. 진실로 백성을 위해 생각하라’고 당부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시 주석은 지난달 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시 전 부총리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아버지를 기렸다.

시 전 부총리는 생전에 “나는 평생 ‘좌(左)’라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 전 부총리는 마오쩌둥의 대표적인 좌파적 오류인 문화대혁명 때 투옥된 인물이다. 그는 이후 복권돼 덩샤오핑의 뜻을 따라 개혁개방을 앞장서 관철했다.

중국중앙(CC)TV가 방영한 시 전 부총리 탄생 10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에도 의미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은둔 생활을 하던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는 이 다큐멘터리에 특별 출연해 시 전 부총리가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를 지지했던 사실을 밝혔다. 후 전 총서기는 ‘공산당 일당 체제의 의사 결정이 자칫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며 법치와 민주주의 강화를 주장하다가 실각했다. 1989년 심장병으로 돌연사한 후 전 총서기에 대한 추모 열기는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이어졌다. 후 전 총서기를 추모하는 인파가 민주화를 요구한 것이 바로 톈안먼 사태다. 아직 복권되지 않은 개혁파의 거물을 시 주석의 부친과 연결한 다큐멘터리는 개혁파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톈안먼 사태로 옥고를 치른 개혁파 학자 우자샹(吳稼祥) 씨는 올해 7월 홍콩 언론에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그는 톈안먼 사태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책사로 활동한 인물로 중국 고위층 사정에 밝다. 우 씨는 “시 주석은 개혁론자이고 현재 시 주석이 보여 주는 일부 좌경적 신호는 ‘거짓 동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시 주석을 좌경으로 보이게 하는 일련의 조치는 당내 정치 평형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모두 ‘거짓 동작’이라는 것이다. 우 씨는 “현재 추진 중인 노동교화소 제도 개혁, 북한에 대한 제재를 지켜보라”고 주문했다. 현재 시 주석이 정치 개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정치적 조건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개혁에 대한 희망 섞인 주장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시 주석의 언급에서 이런 고뇌가 읽히기 때문이다. 그는 올 9월 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연설에서 “개혁은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 주저주저하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그 전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은 “돌을 더듬어 가며 강을 건너는 것”으로 표현돼 왔다. 돌다리를 두들기면서 건너듯 실용에 철저히 기반해 오차 없이 나가는 것이다. 시 주석 앞에 놓인 중국은 과거와 다르다. 시 주석은 “중국의 개혁은 이미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 시기, 깊은 바다에 들어섰다”며 “문제 해결이 매우 어렵고 모두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바닥에 닿지 않아 더듬을 수 없는 위험한 개혁만 남아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로 들린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시진핑#중국#국가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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