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국에 묻어달라” 국군포로 유언 받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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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서 숨진 손동식씨 유해 국내 봉환… 탈북한 딸과 北친인척 노력 결실

나라를 위해 바친 목숨이 60년 만에 유골(遺骨)로 돌아왔다. 6·25전쟁 때 국군포로로 끌려가 북한에서 숨진 고(故) 손동식 씨(1925년생)의 유해가 5일 중국을 거쳐 국내로 봉환됐다. 국군포로 유해가 민간의 힘으로 온전히 북한 땅에서 반출돼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처음이다.

▶본보 9월 11일자 A1면 北의 국군포로 유해, 탈북 딸이 중국 반출
▶본보 9월 28일자 A22면 손명화 “北서 짐승처럼 살다간 아버지, 조국땅에…”

국방부는 이날 국군포로에 준하는 예우를 갖춰 손 씨의 ‘귀국’을 맞았다. 인천의 모처로 들어온 손 씨의 유골함은 태극기로 감싸져 곧바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옮겨졌다. 유골함은 진혼곡이 울리는 가운데 국방부와 서울현충원 관계자들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영현봉환관에 안치됐다.

북한에서 숨진 국군포로의 유해 영접행사가 현충원에서 열린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서울현충원 관계자는 “손동식 씨는 1998년 행방불명자로 확정돼 그 위패가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져 있다”며 “이번에 봉환된 유골과 국내 생존 가족과의 유전자(DNA) 검사를 거쳐 본인으로 확정되면 대전현충원에 안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 씨의 ‘유골 귀환’은 딸인 명화 씨(51·탈북민복지연합회장)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이었다. 육군 9사단 소속 이등중사(지금의 병장)로 참전한 손 씨는 정전(1953년 7월 27일) 3개월 전 공산군에 생포됐다. 국군포로라는 이유로 평생 지하탄광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다 폐암에 걸린 손 씨는 1984년 임종 직전 딸에게 자신의 고향을 경남 김해라고 알려줬다. 그의 유언은 “너만이라도 꼭 그곳으로 가라. (나중에) 내 유해도 고향 땅에 묻어 달라”는 한 맺힌 당부였다. 죽어서라도 북한을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일생의 소원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 탈북한 명화 씨는 부친의 유해를 한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결국 지난달 북한에 남아 있는 친인척들이 무덤에서 손 씨의 유해를 수습한 뒤 배낭에 넣어 북-중 접경지역에서 중국인 브로커에게 전달했다. 손 씨는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물망초의 협조를 얻어 부친의 유해를 국내로 가져올 수 있었다. 명화 씨는 “마침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에 앞서 2004년 이연순 사단법인 6·25국군포로가족위원회 대표가 아버지 이규만 씨의 유해 반출을 시도했으나 중국 공안에 적발되는 바람에 유해의 절반이 유실됐다. 이 외에도 한국으로 송환된 4구의 국군포로 유해가 더 있지만 북한에서 유골을 화장한 뒤 함에 담아 옮겨진 것이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베이징=고기정 특파원 ysh1005@donga.com

#국군포로 유해#유해 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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