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스웨덴發 환상패션 COOOOOL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뉴럭셔리 브랜드 ‘아크네’ 스톡홀름 본사를 가다

스웨덴 컨템포러리 브랜드 ‘아크네’는 영국의 사진작가 카테리나 젭, 프랑스의 갈리에라박물관과 협업해 2013년 가을·겨울 시즌 신제품을 선보였다. 이 제품들은 29일부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스웨덴 컨템포러리 브랜드 ‘아크네’는 영국의 사진작가 카테리나 젭, 프랑스의 갈리에라박물관과 협업해 2013년 가을·겨울 시즌 신제품을 선보였다. 이 제품들은 29일부터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또 다른 스톡홀름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

2008년 패션지 보그는 스웨덴 패션 브랜드 ‘아크네(Acne)’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뜬금없이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니 무슨 이야기일까. 지난달 22일(현지 시간), 스톡홀름 알만다 공항으로 향하는 기자의 머릿속에도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궁금증은 23일 해결됐다. 아크네의 글로벌 매장 중 가장 큰, 약 500m²(약 151평) 규모의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 매장을 본 후였다. 매장은 1973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은행 인질극이 벌어졌던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 아크네 본사 담당자는 “옷을 입어보는 피팅룸이 인질범과 인질들이 대치했던 장소였다”고 귀띔했다. 여기에 아크네 패션의 커다란 영향력을 덧붙여 중의적(重義的)으로 표현한 보그의 ‘설레발’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노르말름스토리 매장은 루이뷔통과 구치를 비롯해 스웨덴의 각종 디자이너 브랜드, 백화점 등이 경쟁하는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다. 대형 쇼핑센터인 엔케이(NK)와 올렌스에도 아크네 매장이 모두 입점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이 매장은 거대하고 화려한 꽃으로 포인트를 준 점포 디자인으로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끈다. 아크네의 대표 제품이기도 한 다양한 컬러의 데님(청바지)은 매장 내부, 가로 12칸, 세로 6칸의 거대한 수납공간에 칸칸이 쌓여 있어 아찔한 기분을 선사하고 있었다.
▼재킷과 데님의 명가… 제품-매장마다 스토리텔링 넘쳐▼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아크네 매장 전경. 매장 안에 전시된 다양한 색상의 청바지들이 설치미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아크네 매장 전경. 매장 안에 전시된 다양한 색상의 청바지들이 설치미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정체성 #1: 창조성

아크네는 원래 1996년 ‘아크네 크리에이티브’라는 이름의 광고 및 디자인 회사에서 출발했다. 이 회사는 1998년부터 패션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1997년 이 회사의 ‘브레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조니 요한손 씨가 업체 홍보용으로 만들었던 100벌의 데님이 언론과 바이어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아크네는 2000년 엘르로부터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받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 아크네는 ‘아크네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내놓고 있다. 패션과 광고, 영상제작, 장난감 및 가구 등 다양한 분야가 사업 영역에 들어 있다. 특히 아크네가 내놓는 잡지 ‘아크네 페이퍼’는 이들의 창조적인 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잡지는 문화와 예술, 패션 분야에서 딱 한가지의 주제를 정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담아 1년에 두 번 출간된다. 그동안 ‘몸’ ‘젊음’ ‘예술가의 작업실’ ‘에로티시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아크네의 대표 패션 제품은 재킷과 데님. 가죽 재킷은 고준희 강민경 서인영 등 연예인들이 즐겨 입으면서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데님은 브랜드 초창기부터 인기를 얻은 대표 제품이다.

아크네는 이달 29일 서울 서초구 반포1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첫 단독매장을 열면서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이 매장은 2013년 가을겨울 시즌 제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영국 출신의 사진작가 카테리나 젭 및 프랑스의 갈리에라박물관(의상 장식 박물관)과 협업한 여성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눈 여겨봐야 하는 것은 매장의 콘셉트와 디자인. 아크네는 모든 매장마다 차별화된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1개 나라, 33개 매장에 있는 매장 콘셉트와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는 말이다. 한국 매장은 ‘조화’를 콘셉트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아크네 관계자는 “매장은 소비자와 소통하는 중요한 공간”이라며 “패스트푸드 업체들처럼 전 세계 매장이 모두 같은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체성 #2: 조화


조니 요한손 아크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조니 요한손 아크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아크네는 스웨덴 패션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스웨덴 패션은, 패션에 대한 환상이 기능주의(Functionalism)라는 프레임에 들어와 있다는 특징이 있다. 기존의 패션에 대한 환상은 그저 예술이거나 패션쇼 그 자체에 머물렀다. 하지만 우리는 그 환상을 누구나 입어볼 수 있을 법한 방식으로 구현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스톡홀름 릴라뉘가탄 거리의 오래된 건물에 있는 아크네 본사에서 만난 요한손 씨는 “아크네 제품은 패션에 대한 환상과 기능성이 조화를 이룬 브랜드”라며 이와 같이 말했다. 그는 “아크네가 패션으로서 아름다우면서도 입기에도 적당하다고 평가를 받는다면 굉장히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강조하는 환상과 기능성의 조화는 아크네 본사 건물에 잘 나타나 있었다. 아크네 본사는 원래 은행으로 쓰였던 건물에 입주해 있다. 입구부터 에메랄드 색을 칠한 고풍스러운 벽과 문, 대리석으로 만든 기둥이 실용적인 건물에 아름답고 고전적인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본사 2층에 있는 쇼룸은 높은 천정에 전통적인 디자인의 유리창을 갖춘 모습이었다. 쇼룸 가운데에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진 붉고 푸른 전시대가 있었다. 그 위에 모자 가방 클러치 등 각종 패션 소품들이 전시 중이었다. 가장자리에는 다양한 색상의 옷 수백 벌이 걸려 있어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요한손 씨는 “아크네는 젊은 브랜드이기 때문에 역사가 깊은 건물을 만났을 때 환상적인 조화를 연출한다고 생각한다”며 “2층 쇼룸의 전시 방식도 젊은 브랜드인 아크네가 제품에 역사를 부여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르말름스토리 매장에 대해서도 “아크네의 젊고 현대적인 디자인이 역사적인 장소와 공존하는 모습이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정체성 #3: 협업과 스토리텔링

아크네 본사의 꼭대기 층은 식사와 회의를 위한 공간이다. 12∼14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큰 나무 탁자가 있다. 왼쪽 구석에는 자유롭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주방도 있다. 지난달 23일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유롭게 냉장고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꺼내 먹으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크네 관계자는 “스웨덴 사회는 모든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의사결정을 하는 민주주의적인 분위기를 고유의 정서로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요한손 씨와 의상 디자이너들이 제품을 구상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요한손 씨와 디자인 팀원들은 일주일에 10번 이상 만나 회의를 하면서 제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요한손 씨가 방향성을 제시하면, 의상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아크네가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협업 작품을 자주 내놓는 것도 이와 같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번 가을겨울 시즌에 선보이는 프랑스 갈리에라박물관과의 협업 작품이 대표적이다. 갈리에라박물관에 전시된 옷은 안감을 대는 대신에 옷 안쪽을 그대로 노출해 놓은 경우가 많다. 이 점에 주목한 아크네 디자이너들은 안쪽 면의 봉제선 등을 그대로 바깥으로 빼내는 방식으로 새롭게 제품을 디자인했다.

아크네의 몇몇 제품에는 요한손 씨의 ‘개인적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다.

2012년 가을겨울 시즌에 선보였던 스판 실크 소재의 남성용 셔츠 ‘아라곤’은 요한손 씨의 친구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매일 아침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얼마나 가슴 아픈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던 친구의 이야기를 디자인에 적용한 것이다. 요한손 씨는 친구의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디자인팀원들에게 전달했고, 디자이너들은 짙은 회색 바탕에 깨지거나 그늘진 모습, 화살을 맞은 모습 등 다양한 모양의 하트 무늬를 반복적으로 넣은 옷을 만들어냈다.

2013년 가을 환절기 시즌 제품에 들어간 꽃무늬는 지어진 지 100년이 지난 요한손 씨의 집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담았다. 그는 정원을 수리하면서 젊은 정원사와 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받은 영감을 그대로 옷에 적용했다. 그 결과 정원처럼 화사한 무늬의 원피스와 가방이 탄생했다. 노르말름스토리 매장을 가득 채웠던 거대한 꽃 장식도 그 영감의 결과물이다.

요한손 씨는 “주변의 재주 많은 사람들과 상호 교감을 나누다 영감을 얻는 일이 많다”며 “아크네의 디자인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스토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톡홀름=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