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日 나오키상 수상작 소설 ‘호텔 로열’

  • Array
  • 입력 2013년 7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연약한 사람들의 우직한 삶 그려
수상 발표 1주일새 20만부 동나

올해 일본 문학상 나오키상을 수상한 사쿠라기 시노 씨가 기자회견에서 수상작 ‘호텔 로열’을 들고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올해 일본 문학상 나오키상을 수상한 사쿠라기 시노 씨가 기자회견에서 수상작 ‘호텔 로열’을 들고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일본 최고 권위의 대중문학상인 나오키(直木)상. 올해는 소설 ‘호텔 로열’을 쓴 사쿠라기 시노(櫻木紫乃·48·여) 씨에게 돌아갔다. 나오키상 수상작이 발표된 지 닷새 만인 22일 도쿄(東京)의 서점에 들렀다. ‘호텔 로열’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대형 서점도 마찬가지였다. 도쿄 시내 모든 서점에서 책이 동났다. 25일이 돼서야 추가 인쇄된 책이 서점에 배포됐다.

출판사 슈에이샤(集英社)에 따르면 올해 1월에 출간된 ‘호텔 로열’은 수상 발표 전까지 1만3500부가 팔렸다. 하지만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해 10만 부씩 두 번이나 인쇄했다. 23일 누계 판매 부수는 21만3500부. 수상 발표 1주일 사이 팔린 부수가 6개월 동안 팔린 부수의 15배에 육박한다. 나오키상의 상금 100만 엔(약 1120만 원)을 무색하게 만든다.

사쿠라기 씨는 1965년 홋카이도(北海道) 구시로(釧路) 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러브호텔을 운영했다. 4개의 큰 섬으로 이뤄진 일본 최북단 섬인 훗카이도는 한국에선 유명 휴양지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도 신칸센이 운행되지 않는다. 겨울에 수 m씩 눈이 쌓이고 눈사태로 사람이 죽는다.

척박하고 소외된 땅에서 자연과 싸워 가며 살아가는 훗카이도 주민들 삶이 소설 속에 녹아 있다. 소설 제목은 부친의 실제 호텔 이름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지역도 사쿠라기 씨가 자란 구시로 습지다. 구시로 습지에 지어진 ‘호텔 로열’을 배경으로 남녀의 다양한 이야기가 7개 단편으로 쪼개져 전개된다.

독특한 점은 이야기의 진행 순서. 매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즉 폐허가 돼 버린 호텔부터 책 첫머리에 등장한다. 마지막 챕터는 호텔을 막 세웠을 때 꿈 많은 당시의 이야기다. 7개 단편 중 하나만 골라 따로 읽어도 재밌다.

러브호텔이 무대여서 주된 내용이 연애나 섹스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연약한 사람들이 우직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누드 사진 모델을 하게 된 여성 점원, 남편과 살을 맞댈 시간이 없는 전업 주부, 부모가 가출해 혼자 남은 여고생, 부인의 바람기를 참고 견디는 고교 교사, 10년 연하의 남편을 둔 호텔 환경미화원 여성, 항상 머릿속이 복잡한 호텔 경영자…. 하나같이 복잡한 사연을 가진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 낸다.

사쿠라기 씨는 고교 졸업 후 법원 기록원으로 일하다 결혼과 함께 전업 주부가 됐다. 그 가운데서도 문예지 ‘홋카이(北海)문학’의 동인으로 다양한 글을 써 오다 2002년 농업 후계자 문제를 다룬 소설 ‘설충(雪蟲)’으로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2007년에 ‘빙평선(氷平線)’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첫 출간 소설이 됐고 지난해 ‘러브 레스(LOVE LESS)’로 처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가 재수 끝에 영광을 안았다. 그는 17일 기자회견에서 내내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살짝 농담이 가미된 소감은 “호텔 집 딸로 태어나 정말 행운이다”였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호텔 로열#나오키상#사쿠라기 시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