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 사외이사 11명 기업출신 vs 이마트 4명 모두 前관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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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구실 못하는 국내 사외이사제

《 실제로 경영에 도움을 받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보험용’ 사외이사를 뽑는 국내 기업의 관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지 15년이 됐는데도 국내 기업들의 사외이사 구성이 바뀌지 않는 것은 우선 선정 과정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 분야와 관계없이 총수가 사외이사를 정하고, 권력기관의 청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니 기업인보다는 관료 출신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외이사의 위상을 높이는 것을 선진 경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지만 시장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선 다양한 업종의 전문가를 사외이사에 참여시켜 체질 전환을 꾀하는 해외 기업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 경영 안목 확대 역주행하는 한국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사외이사 13명 중 11명을 머리사 메이어 야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식품, 호텔, 광고 등 다양한 업종에서 기업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로 채웠다. 유통에서 얻지 못하는 통찰을 찾기 위해서다.

우수한 사외이사 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이름난 GE는 생활용품 업체인 존슨앤드존슨의 전 CEO, 제약회사 바이엘의 CEO 등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 회사 사외이사 16명의 전현직 업종은 금융, 에너지, 농기계, 생활용품, 제약, 화장품, 광고, 보험, 금융투자, IT 등으로 다양하다.

본보와 함께 국내외 기업의 이사회 실태를 분석한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 러셀레이놀즈는 해외 주요 기업은 특히 ‘디지털 리더십’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사외이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통 업종에서도 이른바 ‘디지털 이사회’를 구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 생활용품회사 P&G, 물류기업 페덱스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수전 데커 전 야후 CEO, 멕 휘트먼 HP CEO, 짐 바크스데일 전 넷스케이프 CEO 등 기업별로 3∼7명의 IT 기업인이 사외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신발에 반도체 센서를 넣어 자신의 운동량을 온라인으로 공유한다는 아이디어로 단순 신발회사에서 소셜미디어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한 나이키에는 팀 쿡 애플 CEO가 사외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턱 리처즈 러셀레이놀즈 본부장은 “디지털 사외이사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영진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하며 CEO가 디지털 전략을 만들고 조직을 꾸리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미국이 주도하고 유럽 기업들이 뒤따르고 있다. 아시아 기업들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다. 사외이사 중 기업인 출신 비중이 2006년 33.1%에서 지난해 24.0%로 뒷걸음질친 한국은 물론 일본 도요타도 올해 들어서야 외부 기업 출신 사외이사를 뽑았을 정도다.

짧은 임기도 문제다. 미국 통신업체 버라이즌의 사외이사 11명 중 3명은 1990년대 중반 선임돼 15년가량 임기를 이어 가고 있다. GE 사외이사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8년이다. 이 중 한 명인 더글러스 워너 전 JP모건 회장은 21년째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기업을 제대로 알고 판단해 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전문성보다는 배경을 근거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다 보니 임기 3년을 연장하는 비율이 20%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총수 경영, 권력기관 ‘갑 노릇’ 때문

국내 사외이사의 면면이 바뀌지 않는 것은 기업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슈퍼 갑’ 관료들의 부탁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총수가 사외이사 선임 등 인사권을 독점하는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주요 그룹 비서실장을 지낸 한 인사는 “비서실에는 항상 사외이사 청탁 서류가 잔뜩 쌓여 있다”며 “비서실에서 후보들을 훑어보고 알맞은 사람을 끼워 넣는 식으로 인사가 이뤄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의 고위 임원도 “사외이사는 오너나 그룹에서 정해 꽂아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털어놓았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해 51개 그룹, 250개 계열사의 사외이사 중 회사와 오너, 경영진과의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가 28.7%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해당 기업 또는 계열사 출신, 해당 기업의 법률 자문역을 맡았던 법무법인 출신 인사 등이 해당된다.

대기업이 방패막이 효과를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 한 중견기업 회장은 “경영에 필요하지는 않지만 관료 그룹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전직 고위 공무원을 사외이사로 모시고 싶지만 대기업만큼 보상해 줄 수 없어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계열사 부사장은 “나이도 많고, 워낙 유명한 전직 관료들을 사외이사로 모셔도 직접 로비를 부탁할 수는 없다”며 “권력기관의 정보나 분위기를 알아봐 주는 역할, 방패막이 역할 정도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교수를 선호하는 것은 경영에 까다롭게 간섭하지 않아 부담이 적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시민단체 등 외부 활동이 잦은 교수를 우대하거나 해당 학과 출신 제자그룹에 좋은 영향을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 사외이사의 인력 풀이 이렇게 제한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경영상 판단을 할 때는 사(私) 조직을 만들어 조언을 구하는 CEO도 많다. 한 대기업 CEO는 “방송사 PD 등 젊고 감각 있는 사람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만나며 새로운 분야를 탐색했다”며 “아무리 큰 기업도 사외이사는 교수, 퇴임 관료 등 구색 맞추기용”이라고 토로했다.

박내회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은 “경영자가 사조직을 통해 의사결정을 보완하거나 거수기 역할만 하는 사외이사들만 경영에 참여한다면 경영의 합리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용석·강유현 기자 nex@donga.com
#월마트#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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