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 타계 “영국의 무너진 자존심을 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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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리즘, 그와 함께 사라지길”
■ 대처, 말년에 뇌중풍-치매 고생
경제침체 탈출-포클랜드戰승리 찬사… 탄광노조 “양극화로 소수만 이익”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타계한 후 그의 신자유주의적 사회 경제 정책을 총칭하는 ‘대처리즘’에 대한 공과(功過) 논쟁이 한창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영국 경제를 침체에서 구해냈다는 찬사도 있지만, 복지 축소로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며 계층 간 빈부격차를 확대했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일제히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지만 각국 노동단체, 북아일랜드, 영국 북부 등에서는 반응이 싸늘하다. ‘제3의 길’을 주창한 영국의 유명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대처리즘은 모순된 이념의 총집합’이라고 평가한 것만큼이나 대처의 죽음에 대한 반응과 공과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대처리즘의 골자는 통화량을 통제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민영화와 정부 개입 축소로 작은 정부를 실현한다는 데 있다. 그가 국유화와 복지정책 확대 대신 민간의 자율을 중시하는 정책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영국은 경제개혁에 성공할 수 없었을 공산이 크다. 그의 정책은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어려웠던 영국 경제를 살렸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집권 초기인 1980년 마이너스 2%에 머물렀던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988년 5.6%까지 올랐다. 1980년 16.8%나 됐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988년 4.6%까지 떨어졌다.

아울러 포클랜드전쟁 승리, 유혈테러를 남발하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대한 강경 대처로 영국의 자존심을 회복한 점은 그의 가장 큰 공으로 꼽힌다. 그는 미국의 추종국으로까지 인식되던 영국의 이미지를 바꾸고 원칙과 소신을 고수하는 지도자상을 보여줬다.

문제는 성장의 이면에 노동자의 큰 희생이 있었다는 점이다. 대처는 재임기간(1979∼1990년) 노동유연화를 골자로 한 다수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1984년 노조와 협의 없이 20개 탄광을 폐쇄하고 약 2만 명의 광원을 해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제조업 위주의 영국 북부 지역 경제를 침체시켰고 지역 및 계급 갈등도 격화시켰다.

심각해진 실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대처 집권 시절 10대를 보낸 세대들 중에는 술이나 담배에 의존하면서 정치에는 무관심한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대처 세대’ 혹은 ‘대처의 아이들’로 불렸다.

영국 탄광노조(NUM)는 8일 “대처리즘의 이익은 소수에게만 돌아갔다”며 “그의 죽음과 함께 대처의 정책도 함께 사라지기를 기대한다”고 비판했다. ‘빵과 장미’ ‘랜드 앤드 프리덤’ 등 노동자에 관한 영화를 주로 만들어 ‘블루칼라의 시인’으로 불리는 켄 로치 감독(77)은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해서 경쟁 입찰에 부친 뒤 가장 싼 가격을 부른 자에게 넘기자. 그게 바로 그녀가 원했던 것”이라며 독설을 날렸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마거릿대처#영국총리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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