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위원장 “살아온 길이 정치와 안 친해… 총리, 발 들이지 말 것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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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위원장이 말하는 ‘인수위 48일’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간에 국무총리 후보를 사퇴한 뒤 개인적으로 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오늘까지 (인수위원장직을) 하길 잘했다”면서 “나는 살아온 길이 정치와 친하지 않다. 총리에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간에 국무총리 후보를 사퇴한 뒤 개인적으로 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오늘까지 (인수위원장직을) 하길 잘했다”면서 “나는 살아온 길이 정치와 친하지 않다. 총리에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22일 동아일보 기자들을 보자마자 “불상사가 난 뒤 언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았지만 인수위원장으로서의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고 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늘 가지고 다니는 문서 바인더에서 인수위원장 지명 직후 써놓았다는 문구를 보여줬다. ‘칼에 베인 상처는 일주일이면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간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지 닷새 만에 자진사퇴한 상처가 여전히 깊다는 의미로 들렸다. 인터뷰는 오후 4시 인수위 해단식 직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 인수위원장실에서 진행했다. 인터뷰가 1시간을 넘기자 인수위 관계자는 “그만 정리해 달라(끝내 달라)”고 요청했지만 김 위원장은 “이왕 만났으니 묻고 싶은 것은 다 물어보라”고 했다. 인터뷰는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총리 후보는 자진 사퇴했지만 인수위원장직은 끝까지 수행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다 그만두고 여행이나 가고 싶었다. 그 야단을 치고 매일 나와서 이 일을 하는 게 쉬웠겠나. 하지만 총리 후보와 인수위원장은 관계없는 것 아니냐. 그래서 (대통령) 당선인이 나를 처음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했던 상태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중간에 총리 후보 사퇴했으니까 이것도 못하겠다고 나자빠지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과 맞지 않는다. 오늘까지(끝까지)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당선인도 인수위원장직을 계속 유지해 달라고 부탁했나.

“총리 후보를 사퇴하면서 ‘인수위원장직을 계속할지는 (당선인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더니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계속 해야죠’라고 하더라. 당선인의 다른 말이 있을까 싶어 하루 이틀 기다렸는데 진영 부위원장도 ‘그냥 하시면 된다’고 하더라. 내가 그만뒀다면 그 양반(당선인)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을 거다. 부위원장 대행체제로 가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나.”

―총리 후보를 사퇴한다고 했을 때 박 당선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당선인은) ‘왜 그만두느냐. 그만두지 말라’고 하고 나는 ‘그만둬야겠습니다’라면서 뭐라고 뭐라고 했지….”

이 대목에서 김 후보자는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화제를 돌렸다.

“내가 고등학교(서울고)를 다닐 때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만 모이면 하는 잔소리가 있었다.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 그리고 그 자리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라고. 그러면서 ‘어디 가든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돼라’고 말했다. 밤낮 그 얘기를 하니까 당시에는 ‘저 영감 또 그 소리를 한다’고 싫어했는데 하도 들으니 그게 머리에 박히더라. 한 번 맡은 이상 끝까지 해야지. 임명권자의 뜻에 따라서….”

―박 당선인이 위원장한테 상당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불러내서….(웃음) 그 양반이 내게 미안할 게 뭐가 있나. 내가 그 양반에게 미안하지. 그게 진심이다. 내가 (총리 후보직을) 그만두고 끝났으면 상관없는데, (언론에서) 내가 낙마해서 인사가 꼬였다고 하니….”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11일 박 당선인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발탁된 뒤 인수위원장 임명에 이어 총리 후보로까지 지명됐다.

―박 당선인이 계속 중용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건 그 양반에게 물어봐야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선대위원장을 시킬 때 누군가 나를 천거했겠지. 선대위원장을 시켜보니 특별히 잘하는 건 없지만 사고 칠 것 같지 않으니 인수위원장도 시켰겠지. 법조인에 대한 호감 같은 것은 있는 것 같더라.”

―총리를 맡아 달라면서 박 당선인은 뭐라고 부탁하던가.

“그 얘기는 하지 말자. 낙마한 마당에 변명처럼 들리지 않겠나.”

―만약 박 당선인이 다른 공직을 제안한다면….

“언론에서 가만히 있으면 하지.(웃음) 그 양반에게 (총리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이렇게는 말했다. ‘저를 계속 중용해 주셨는데 총리가 아니더라도 제가 당선인을 계속 도와드릴 다른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인사치레지 날 쓸 데가 어디 있겠나. 혹시 법제처장을 시켜주면 모르지. 그것도 한 5년 시켜준다면….(웃음) 올해가 건국 65주년이다. 행정규제 완화니 뭐니 그러는데 말로만 할 게 아니라 법령을 대대적으로 싹 정비해야 한다.”

―박 당선인의 인선 스타일을 두고 ‘밀봉 인선’이니 ‘깜깜이 인선’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런 비판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밀봉을 하지 않으면 어떡하란 말이냐. 행정 관료를 20년 넘게 한 대학 동창이 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대통령이 불러서 갔더니 ‘너 무슨 장관 해라’ 하면서 ‘당신 놀랐지?’ 하더란다. 장관이라는 게 그렇게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증한다고 100명의 이름을 붙여놓고 ‘이 중에서 써야지’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내각, 청와대 인선에서 ‘성균관대 쏠림 현상’이 문제가 됐다. 만약 인사팀이 꾸려져 함께 검토했다면 이런 쏠림은 없지 않았을까.

“성균관대 출신이 의외로 많긴 많더라. 하지만 그 양반은 그 생각을 못했을 거다. 아마 발표하고 나서 본인도 ‘성균관대 출신이 많구나’ 했을 것 같다. 내가 (당선인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보니까 그 양반은 누가 어느 대학 나왔는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전문성과 능력만 본 거지. 언론의 비판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차관 인사 등을 하면서 정치적 배려를 하지 않겠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수위가 막을 내렸다.

“원론적으로 (여당에서) 원안을 제시하고 금방 양보하면 더 많이 양보해야 하니 버티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닐까. 그래도 어느 선에서 양보하지 않겠나.”

―인수위 활동에서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당선인에게 건의해 몇백 명씩 임명했던 자문위원을 두지 않은 게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인수위 직원과 관련한 스캔들이 없었다.”

―하지만 ‘불통 인수위였다’는 비판이 있다.

“언론 보도를 일부 통제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인수위는 각계각층에서 일체성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어서 각자 생각도, 태도도 달랐다. ‘통제를 안 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최대석 전 인수위원이 갑자가 사퇴했다.

“인수위 활동하고 연관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최 전 위원이 직접 (사임 이유를) 밝히겠다고 하면 말릴 수 없는 것 아니냐. 언젠가 (사임 이유가) 밝혀지면 왜 인수위에서 밝힐 수 없다고 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밝혀지면 모든 사람이 수긍할 것이다.”

박 당선인의 통일외교분야 핵심 참모였던 최 전 위원은 인수위 활동 7일 만인 지난달 12일 돌연 사임했다.

―인수위 활동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국정과제) 전반을 더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가장 아쉽다.”

―21일 나온 국정과제를 보면 대선 공약이 일부 수정됐다. 박 당선인이 여러 차례 “공약은 다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역풍도 우려된다.

“인수위에서 공약을 연구 중인 만큼 기다려 달라는 취지였지 공약을 절대로 수정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본다. 선거 때 약속했으니까 기본적으로 지키는 게 옳다. 하지만 가다가 변경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조금도 변경하지 않고 꼭 그대로 갈 수가 있겠느냐. 정치가 그렇게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

―가까이서 지켜본 박 당선인은 어떤 사람인가.

“장점이 많은 사람인데 더 말하면 아첨이 되니까 그만하겠다.”

―가장 큰 장점을 꼽는다면….

“그 양반이 살아온 과정이 순탄치 않지 않나. 어렸을 때는 귀하게 컸을 테고. 살아온 과정을 보면 상식적이지 않을 수 있는데 얘기하다 보면 전혀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아주 상식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비치길 바라나.

“이 양반은 ‘못사는 사람이 잘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참 많이 하더라. 국민행복이란 말이 추상적이지만 조금씩 잘살게 되면 국민 모두 행복해지지 않겠나.”

이재명·동정민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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