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내가 만난 김지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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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오피니언팀장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최근 기자의 김지하 인터뷰 기사를 읽은 한 후배 기자가 “약간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상이네요”라고 한다. 주변에도 “(정신) 상태가 괜찮던가”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기자 역시 인터뷰 전엔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까 내심 걱정했다. 그간 언론에 비친 그의 모습엔 격한 언어, 심한 감정기복, 논리 비약이 꽤 있어 보였다.

실제 만나 본 그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겸손했으며 진지했다. 형형한 눈빛에선 자신감이 느껴졌다. 오랜 외부와의 단절 속에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온 사람 특유의 논리적 확장이나 치우침이 간간이 엿보였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공부가 깊음을 알 수 있었다. 전문 분야인 문화는 물론이고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여성문제에까지 다양한 고전을 인용하며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몹시 추웠던 인터뷰 당일에도 정선아우라지를 지팡이 짚은 불편한 몸으로 혼자 걸으며 “정선아리랑과 한국정신의 원류를 생각하고 왔다”고 말했다. 진지한 탐구자세에 고개가 숙여졌다. 하지만 진짜 숙연케 한 건 말(言)이 아니었다. 민주화 투쟁에 따른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꿋꿋이 이겨내며 시대의 아픔과 미래를 고민하는 올곧은 집념이었다. ‘할 얘기는 어떤 비난을 무릅쓰고도 한다’는 단호한 용기였다.

그의 목소리는 대체로 담담했지만 가족이 겪은 고통에 관한 대목에서는 혼잣말을 하듯 톤이 낮아졌다. 그 사연은 그와 가족을 치유해준 재야 한의학자 장병두 선생의 평전 ‘맘 놓고 병 좀 고치게 해주세요’의 서문에서 밝힌 바와 다르지 않았다.

‘박정희가 죽고 석방됐지만 환청과 환각이 계속됐다. 수면제와 독한 안정제를 끊임없이 먹어야 했다. 혈압, 당뇨, 전립선비대, 전립선암에다 요통, 호흡곤란, 비만 등은 정신력 저하, 망각, 치매를 불렀다. …작은아들은 내가 처음 발광했을 때 놀라 발을 구르며 울다 울다 끝내 뇌신경 반이 마비되어 다 자라도록 낮에는 자고 밤엔 깨어 있던 아이다. 큰아들도 극도의 우울증에 사로잡혀 세상과 공부에 취미를 잃어버렸다. 둘 다 대학도 못 갔고 수많은 장애를 경험해왔다. …우리 식구 중 끝까지 치료가 안 되고 끝없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던 이가 아내다. …내가 혹시라도 살해당할까, 모략과 음모의 희생물이 되지 않을까. 조직적으로 매장당하지 않을까. 혼자 걷다 테러당하지 않을까. 걱정걱정하는 동안 멍들고 병들고 속이 시커멓게 썩어버린 사람이다.’

지금은 고통에서 벗어난 부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도 “아이들이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하루는 의사에게 “아이들이 너무 착해서 걱정”이라고 했다가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기 때문에 착해진 것”이라는 답을 듣고 통곡했단다.

김 시인은 요즘 편하고 행복해 보였다. 두 아들도 완치된 뒤 ‘공부 열정’이 솟아 유학을 준비 중이다. 정신병에서 놓여난 김 시인도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조용했던 삶이 최근 주목을 받은 계기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지지선언 때문이었다. 그의 행보가 눈에 띄는 건 권력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정성 때문이리라. 1970년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썼을 때, 또 1991년 학생운동권의 분신이 줄을 잇자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고 호소할 때의 결기 그대로였다.

혹자는 그의 거친 언어가 불편하다고 말하지만 ‘오적’을 떠올리면 전혀 새삼스러운 바가 아니다. 인터뷰 때 그는 비속어, 과장된 비유, 걸쭉한 풍자로 오적을 꾸짖던 그때처럼 현 정치와 세태를 그만의 언어로 질타했다.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놀라웠던 것은 그런 그를 정신이 성하지 않은 사람인 양 몰아붙이는 이들이 꽤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부분 ‘입(口) 진보’들, 행동은 없고 말로만 떠들어대는 말꾼들이었다.

[채널A 영상] 김지하 시인, 박근혜 당선인 지지 이유는? (변희재)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김지하#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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