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조지형 교수의 역사에세이]링컨의 2분 연설, 꽁꽁 언 세상 녹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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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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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소작농의 아들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유난히 독서를 좋아했다. 1863년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헌정식에서는 266개의 단어로 역사적인 연설을 남겼다. 1864년 링컨 대통령이 어린 아들인 테드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소작농의 아들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유난히 독서를 좋아했다. 1863년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헌정식에서는 266개의 단어로 역사적인 연설을 남겼다. 1864년 링컨 대통령이 어린 아들인 테드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을 마쳤지만 청중은 그저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박수도 치지 않았어요. 링컨은 안경을 벗어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 내 연설은 실패야. 완전 실패야. 사람들을 봐. 얼굴에 실망의 빛이 역력해. 연설문을 여러 번 고쳐 썼건만 제대로 수정하지 못한 탓이야. 아이고, 내 연설은 완전 실패였어.”

본보 2012년 12월 19일자 A2면
본보 2012년 12월 19일자 A2면
속상한 링컨의 등 뒤로 박수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거봐, 박수 소리도 작잖아”라고 링컨이 읊조렸어요. 청중은 열광적으로 환영하기는커녕 싸늘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버드대 총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에드워드 에버렛은 링컨의 연설이 매우 훌륭했음을 즉각 알아챘어요. 에버렛은 링컨에 앞서 2시간 동안 연설을 했습니다. 게티즈버그 전투를 어떻게 치렀고 연방군이 어떻게 승리를 거뒀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지요.

링컨의 연설은 모두 266개의 단어로 이뤄져 2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에버렛은 링컨의 연설이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헌정식의 핵심을 정확하게 설명했다고 감탄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게티즈버그서 ‘하나의 국가 ’ 역설

미국은 1861년부터 4년 넘게 남과 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 전쟁으로 62만 명이 죽었고 41만 명이 다쳤습니다. 1863년 7월 초 펜실베이니아 주의 게티즈버그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만 사상자가 3만5000명이나 나왔어요.

대통령으로서 링컨은 이렇게 많은 죽음 앞에 매우 비통했어요.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난 후에 시체를 임시로 묻었다가 영구히 매장하기 위해 11월 19일에 국립묘지 헌정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헌정식의 연설에서 링컨은 남부군에게 원망도 비난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우쭐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링컨은 비록 현재는 남부와 싸우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부인도 미국 국민이었음을 잊지 않았어요. 전쟁이 끝나면 남부가 미국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어요. 남부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는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링컨은 진정한 승리란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고 내 편으로 품는 데 있음을 잘 알았죠. 그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현명한 지도자였습니다.

연설의 첫 부분에서 링컨은 미국의 이상과 신념이 무엇인지를 밝혔어요. 독립선언서를 상기시키면서 미국을 자유와 평등에 바쳐진 국가로 정의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우는 큰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셈이죠.

링컨은 미국이 하나의 국가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남부는 농업 중심의 사회였고 북부는 상공업 중심의 사회였어요. 그래서 남부에서는 큰 농장에서 일할 노예가 중요했지요. 북부는 상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높은 관세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 필요했어요. 남부와 북부는 사회 경제적으로 다른 체제를 갖고 갈등을 빚었습니다.

링컨은 남부에서 단 한 표도 받지 못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부는 링컨을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북부만의 대통령이라고 비난했죠. 그러나 링컨은 남부든 북부든 모두 미국의 한 부분이며 사회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한 국가적 신념, 즉 자유와 평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역사를 보면 지역주의는 항상 있어요. 중요한 점은 지역 간 갈등이나 이익을 넘어 여러 지역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하는가 하는 거죠.

그런데 링컨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다. 그런데 주인이 하나의 국가를 여러 국가로 나누자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국가는 주인인 국민의 명령을 따라야 하나?”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국민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일까요?

당시 남부는 미국을 일종의 동아리처럼 생각했어요. 원하면 언제든지 동아리에 가입할 수도, 탈퇴할 수도 있듯이 미국 연방에 가입하거나 탈퇴하는 것도 모두 주의 권한이라고 생각했죠.

링컨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이라는 국가는 영원히 해체할 수도, 탈퇴할 수도 없다고 믿었어요. 왜냐하면 미국은 영구적인 신념, 즉 자유와 평등에 바쳐진 국가니까요. 링컨은 미국에 영구적인 사명을 불어넣은 것이죠.

남북전쟁 후 美대통합 이끌어

게티즈버그 연설이라고 하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포현을 많이 떠올립니다. 민주주의를 간략하게 가장 잘 보여준 표현으로 유명합니다. 사실 이 표현은 링컨 이전에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목사였던 시어도어 파커가 했던 말이에요. 파커는 미국이 백인뿐 아니라 흑인 노예도 포함하는 모든 국민의, 모든 국민에 의한, 모든 국민을 위한 국가여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링컨은 파커의 표현을 연설의 핵심으로 삼았어요.

링컨은 1863년 1월 1일에 노예해방령을 발표하면서 흑인도 미국 국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11개월 후에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장병들의 숭고한 죽음으로 ‘자유의 새로운 탄생’을 보게 됐다고 선언했던 겁니다.

게티즈버그에 수천 명이 모여들었지만 정작 그의 연설을 들은 사람은 앞줄에 있는 몇백 명밖에 되지 않았어요. 시끄러운 분위기에 너무 짧은 연설이어서 제대로 경청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링컨의 연설이 신문에 인쇄돼 나오자 큰 환영을 받았어요.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헌정식이라는 역사의 순간에 영원성을 부여해 역사적인 사건으로 만든 연설.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고 영속적인 국가적 이상을 보여준 링컨의 짧지만 강력한 연설. 2월 25일에 취임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서도 이런 훌륭한 연설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링컨#게티즈버그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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