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시장부담 줄이되 재벌 반칙은 엄격규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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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安과 차별화
■ 경제민주화 공약 발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는 16일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며 ‘시장에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경제적 약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출자총액제한제 부활이나 재벌개혁위원회 설치 등 재벌 압박의 수위를 놓고 경쟁하는 야권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정치적 구호”라고 규정하며 차별화하겠다는 것. 아울러 경제민주화 후퇴 지적에 대해선 실현 가능성으로 맞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후보는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고 국민 공감대가 미흡한 정책은 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며 “대기업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되 시장지배력을 남용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재벌 개혁보다 불공정 제재에 무게


‘박근혜식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지배구조에 인위적으로 손을 대기보다는 불공정 행위를 엄단하는 데 무게를 뒀다.

대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새롭게 들일 비용과 이 과정에서의 혼란은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박 후보의 기본인식이다.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계속 주장해 온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안을 채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선 “기업에 몸담은 직장인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파격적인 금산분리 강화 조치다. 대기업의 증권·보험·카드 계열사가 자산 규모나 시장지배력이 일정 조건을 넘으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비금융계열사와 칸막이를 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이 방안이 현실화되면 삼성그룹은 생명, 전자, 카드 사이에 얽힌 지분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또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에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지분 한도를 현행 15%(특수관계인 포함)에서 10%(금융계열사 단독)로 낮추기로 했다. 앞으로 5년 동안 추가로 1%포인트씩 낮춰 최종 5%로 묶겠다는 구상이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도 현행 9%에서 4%로 축소하기로 했다.

논란이 됐던 재벌 총수의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방안은 ‘헌법상의 평등권 침해 우려’를 들어 공약에서 배제했다. 그 대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등에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고 사면권을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대기업의 부당행위로부터 중소기업이나 소비자의 권익을 지키는 방안을 대폭 강화했다. ‘대기업 봐주기’라는 비판을 받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일부 개방해 감시의 눈을 늘리기로 했다.

○ 김종인과 결별 각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멘토 격인 김 위원장은 이날 정책 발표에 불참하면서 사실상 결별 수순에 들어섰다. 박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더이상 김 위원장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제안한 50개 정책 중 47개를 받아들였는데 이를 수용하지 못해 회견장에 나타나지 않는 건 참모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날 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제안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은 세 가지 정책에는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에 대해선 “세계적 선례가 거의 없고 현행 법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후보 측은 김 위원장의 ‘고집’이 도를 넘어섰다고 여긴다. 박 후보는 김 위원장을 설득하기 위해 당초 14일에 하려던 회견을 16일로 미뤘다. 전날엔 김 위원장에게 회동까지 제안했는데 약속 2시간 전 불참을 통보하자 박 후보도 “이제는 할 만큼 했다”고 본다는 것.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 “규제 위주로 돼 있는데 규제만 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며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같은 잘못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별 가능성에는 “내가 있고 없고가 무엇이 중요하냐. 할 일은 다 했고 경제민주화도 다 끝나 후련하다”면서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는 거고…”라며 즉답을 피했다. 김 위원장은 17일 경남 창원대에서 예전에 박 후보에 대한 지지 호소차 잡아둔 남해안포럼 초청 특강에 나선다.

홍수영·동정민 기자 gaea@donga.com

▼中企 공정추구 환영, 대기업 투자위축 우려, 경총 수위낮춰 다행▼

■ 경제계 엇갈린 반응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발표한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한 재계의 반응은 기업 규모에 따라 엇갈렸다. 중소기업계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바라는 공정거래 질서 확립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으나 대기업은 “투자 의욕을 꺾는 내용”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차기 정부 핵심 실천과제로 택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며 “이런 공약들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집행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기업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은 “극단적인 방안이 제외됐을 뿐 기업 경영활동을 제약하고 투자를 위축시킬 내용들”이라며 “전반적으로 문제될 내용이 많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중소기업을 모두 회원사로 두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어중간한 반응을 보였다. 대한상의 전수봉 조사1본부장은 “재벌 지배구조 개혁보다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을 강조하고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을 제외하는 등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경총 황인철 기획홍보본부장은 “그간 새누리당 안에서 나오던 강력한 대기업 규제 방안이 빠져 다행”이라면서도 “기업의 순환출자가 투자와 일자리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는 만큼 신규 순환출자를 막겠다는 부분은 좀 더 고민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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