低성장-원高의 늪… 투자? 비상경영할 판

동아일보 입력 2012-11-07 03:00수정 2012-11-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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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그룹 투자심리 냉각
국내 30대 그룹 중 하나인 A그룹의 B건설회사는 내년 사업계획을 짜면서 따로 비상경영 계획을 만들고 있다. 자금경색이 심각해질 때를 예상한 대책이 주요 내용이다. 국내 일감은 이미 반 토막이 났고,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해외시장도 경쟁이 과열되면서 이윤이 낮아져 내년에는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확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게 B사의 고민이다.

이 회사의 C 사장은 “이런 상황에서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신규사업 투자는 아예 생각지도 못한다”며 “올해 투자도 비상시 적용할 ‘플랜 B’를 만들고 상황을 점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 기업 투자 축소 현실화

이처럼 국내 주요 그룹들이 투자를 축소하거나 연기하는 까닭은 올해와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고 원-달러 환율도 당분간 1100원대를 밑돌 것으로 예상돼 내수(內需)와 수출 모두 부진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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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외적인 불확실성도 커다란 변수다. 많은 기업들이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야 결정하겠다며 중요한 투자결정을 보류하고 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대기업을 옭죄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일부라도 현실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신규법인 설립 등 투자를 결정하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7∼9월) 설비투자는 작년 동기대비 6.0% 줄어들었다. 설비투자는 2009년 4분기부터 꾸준히 증가해 올 1분기 증가율이 8.6%까지 올랐지만 2분기에 3.5% 감소했고, 3분기 들어서는 감소 폭이 더 커졌다.

2분기 설비투자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유럽 재정위기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일부 업종 외에 조선, 철강 등 국내 주력 업종의 3분기 실적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부진한 실적이 설비투자 위축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각종 기업규제 공약을 내놓는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기업들이 위험성이 큰 장기 설비투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 신규 투자 축소, 일자리 영향 커

주요 기업의 투자 축소와 성장 정체는 고스란히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분기 장기균형 수준만큼 설비투자를 했다면 5만6270개의 일자리가 더 창출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계는 특히 기업의 투자가 태양광,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신규사업 분야에서 줄어드는 것을 심각한 신호로 보고 있다. 신규사업 투자는 경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 나머지 기업도 뒤따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연내에 먼저 대형 OLED TV 패널을 생산하겠다며 앞다퉈 투자를 준비하던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다 거의 동시에 투자 시점을 내년으로 늦췄다.

규제에 민감한 신규 투자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기업의 자유로운 투자를 허용하는 것이 경제 살리기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경제민주화로 계열사 편입이 어려워지거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벌어져 신규사업 투자가 줄면 내년 경기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욱 클 것”이라고 말했다.

○ 해외 투자는 예정대로

반면 주요 그룹들은 성장성 있는 해외시장 투자는 공격적으로 늘리는 ‘이중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했던 해외직접투자는 2010년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해 지난해 말 444억9000만 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2008년 367억5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유럽 재정위기에서도 글로벌 영토 확장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반기(1∼6월) 국내 대기업들은 중국, 브라질, 미국 등 성장이 예상되는 시장에 투자를 집중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6일 현대차 브라질 상파울루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로 출국했다. 브라질 공장을 남미시장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동국제강은 경북 포항시의 후판 공장을 과감히 폐쇄했지만 2015년 완공이 예정된 브라질 제철소 투자는 지속할 계획이다.

기업들은 과거 중국과 같은 신흥국을 글로벌 생산기지로 여겼지만 지금은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책임지는 전략기지로 인식하고 있다. 디자인과 연구개발(R&D), 생산, 마케팅 기지를 모두 해외에 두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면서 해외투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홍석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위기에 처한 선진국 시장보다 중국과 같은 신흥국 시장에서의 승부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첨단 공장과 신규사업 투자도 해외에 집중되는 추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5월 중국 쑤저우(蘇州)에 8세대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을 착공했고, 삼성전자는 중국 산시 성 시안(西安)에 70억 달러 규모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시장에서 품질 향상과 고급모델 비중 확대라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 개발이 진행되는 중국 서부지역도 공략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국영석유회사 시노펙과 합작해 생산설비 건설을 추진 중이다. 세계 최대 수요처로 떠오른 중국을 아예 ‘제2의 내수시장’으로 잡겠다는 전략이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설비투자#직접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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