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문길주]베트남 과학기술을 디자인한 한국

동아일보 입력 2012-11-07 03:00수정 2012-11-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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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길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지난달 29일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역사에 새 이정표가 새겨진 날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베트남 과학기술부가 하노이에 KIST를 모델로 한 과학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번 협정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KIST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한 베트남 정부가 3월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전 세계 과학기술사를 통틀어 한 나라가 다른 나라 국가연구소 설립 운영 모델을 제공해준 예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1966년 미국 정부의 지원 아래 미 바텔 연구소 도움을 받아 설립된 KIST가 반세기 만에 발전 역사와 노하우를 후발국에 전수하는 것은 공적개발원조(ODA)의 가장 이상적인 선순환 사례라고 생각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과학기술 발전을 근간으로 세계의 선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반도체, 이동통신, TV, 자동차, 선박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며 많은 개도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어 왔다. 많은 선진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ODA 사업을 진행하지만 개도국들은 유독 한국의 성장과 발전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아시아 최빈국의 궁핍한 현실을 단기간에 타개해낸 우리의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의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때문에 우리가 개도국에 주는 희망의 원조는 선진국의 경제적 원조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과거 KIST 설립을 지원했던 바텔 연구소장 셔우드 포셋 박사는 “KIST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발전되어 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흐뭇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가연구소를 벤치마킹했지만 그들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단위연구실제와 연구원가제도 등 KIST만의 독특한 운영방식을 도입하여 스스로의 발전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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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의 도움을 받는 베트남을 비롯한 많은 개도국 역시 그들 실정에 맞는 연구소 설립과 운영을 위한 나름의 방안을 모색해야겠지만 KIST라는 롤 모델을 통해 과학기술의 자립 기반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베트남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이 남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KIST가 그동안 추진해왔던 과학나눔 운동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KIST는 우리가 받은 혜택과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과학 나눔 운동을 계획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 1% 기부 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 운동으로 우리 과학계는 물론 개도국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희망의 과학 나눔을 펼쳐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인도네시아에 바이오에탄올 생산설비를 구축했고, 지난 10년간 운영해온 ‘국제 R&D 아카데미(IRDA)’는 개도국 과학인재 양성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IRDA를 통해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등 21개국에서 147명의 석·박사 연구자가 배출됐다. IRDA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학생들은 대부분 정부와 연구기관, 대학에 몸담아 국가 간 과학기술 협력의 창구가 되고 있다. 그동안 개도국의 농촌개발, 교량건설 등 물질적 공조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우리나라의 ODA 사업을 인재양성, 과학기술,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전환해 본질적인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다.

베트남은 새로 설립될 연구소의 명칭을 ‘베트남의 KIST’라는 뜻에서 ‘V-KIST’로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 KIST가 그대로 옮겨간 베트남에서 희망의 과학기술 ODA가 만든 따뜻한 결실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문길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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