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는 詩]금단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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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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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만원버스가 다시 움직인다… 개운하다 상쾌하다… 속도에 중독된 우리들…

김기택 시인 동아일보DB
김기택 시인 동아일보DB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만원 버스 안. 후끈한 열기에 덜덜거리는 진동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손잡이를 잡은 팔은 저려오고, 다리는 뻐근하다. 욕지기가 나오려는 찰나. 차가 속도를 낸다. 부응∼ 하고 달린다. 숙변이 내려간 듯, 두통이 씻겨간 듯 개운하다, 상쾌하다. 속도는 달콤한 것, 우리는 속도에 중독된 현대인들.

‘이달에 만나는 시’ 11월 추천작으로 김기택 시인(55)의 ‘금단 증상’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가 추천에 참여했다.

평소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즐겨 이용하는 시인은 길거리에서 시를 건져냈다. 마치 느려터지게 가는 버스 안에 동승한 것처럼 시는 생생하다. “길이 막히면 승객들의 반응이 참 다양하게 나타나죠. 말하자면 일종의 속도에 대한 금단증상이죠. 빨리 달리면 편해하고, 느리거나 중지돼 있으면 불안을 느끼죠.”

한 장면을 묘사한 듯하지만 실은 각기 다른 시점과 장소의 여러 승객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대상을 직접 보고 시를 쓰지 않는다. 본 것들이 내 속에서 되뇌어져 한참 뒤 시가 나온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럼 시인은 느긋한가? 그가 껄껄 웃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찰이면서 사실은 나에 대한 관찰이기도 하죠. 저도 안절부절못해요.”

손택수 시인은 “뭉크의 ‘절규’가 연상되는 시편들 속에 유머가 있다. 시원시원한 리듬과 야무진 풍자의식이 연출하는 블랙코미디!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참혹한 비애와 동시대 삶에 대한 연민이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며 추천했다. 김요일 시인의 추천사는 이렇다. “무겁고 어두운 삶과 죽음의 풍경을 지독히도 냉철하게 묘사하는 김기택 시인은 본질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은 견자의 눈으로 세상을 투시한다.”

이번 시집 속 죽음을 다룬 시들에 대한 호평도 나왔다. 장석주 시인은 “죽음이 아니라 주검에 초점을 맞춰 문명의 지옥도(地獄圖)를 펼쳐낸다. 읽는 내내 소름이 돋는 시집”이라고 평했다. “김기택만의 ‘극사실적 묘사’의 힘은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되묻게 하는 시집. 읽는 이가 비정하다는 마음을 갖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방법론을 김기택식 기도라 부르고 싶다.” 이원 시인의 추천평이다.

이건청 시인은 김요아킴의 시집 ‘왼손잡이 투수’(황금알)를 추천했다. “야구 경기의 실체 속에서 삶의 근원을 밝혀내려는 정직하고도 열정적인 시편들을 담고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금단 증상#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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