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부품’ 98% 영광 5, 6호기 집중…한수원, 몰랐나 숨겼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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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난 원전 관리



한국수력원자력과 지식경제부는 5일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납품된 원자력발전소 부품이 7600여 개에 이른다고 발표하면서도 “원전의 안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강조했다. ‘미(未)검증 부품’은 모두 원자로 격납건물 외부에 있는 보조설비에 사용됐거나 재고 상태이고, 핵심 안전설비에 쓰이지도 않았으며, 원전의 안전시스템이 부품 오작동을 감시하고 3중 4중으로 사고를 방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들여다볼수록 한수원의 원전 관리가 허술했다는 점이 드러난다. 사고처리 과정조차 ‘늑장 대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전사고 은폐, 납품 비리, 직원 마약 복용 등 올 들어 발생한 한수원의 근태 사건을 거론하며 “원전 관리의 총체적 허점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잦은 최근 원전 고장 정지를 놓고 한수원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의견도 나온다.

○ 영세 부품업체와 ‘대충대충’ 합작인가


엉터리 부품을 공급한 업체들은 일반 산업용 제품을 안전성 품목으로 인정하는 한수원의 제도를 악용했다. 한수원은 ‘Q등급’이라 불리는 안전성 품목 부품을 구할 수 없을 때 일반 산업용 제품이라도 해외 지정기관에서 품질 검증을 받았다면 Q등급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를 2002년부터 시행했다.

또… 고개 숙인 한수원 사장 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품질보증서가 위조된 원전 부품이 납품된 사건에 대한 정부 브리핑이 끝난 뒤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왼쪽)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또… 고개 숙인 한수원 사장 5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품질보증서가 위조된 원전 부품이 납품된 사건에 대한 정부 브리핑이 끝난 뒤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왼쪽)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이 제도는 미국 전력연구원의 권고 기준을 거의 베껴서 만든 것으로, 부품보증서를 해외기관으로부터 한수원이 직접 받는 게 아니라 납품업체가 해외기관에서 받아 한수원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이 영세한 규모여서 건당 300만 원에 이르는 보증서 발급 비용에 압박을 느끼는 납품업체들에 ‘위조의 기회’를 열어둔 셈이다. 실제로 납품업체들의 부품보증서 위조는 이듬해인 2003년부터 일어났으며, 특히 한수원이 품질검증기관으로 인정하는 해외기관 12곳 중 한 곳의 보증서가 집중적으로 위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수원이 품질보증서 위조 사실을 처음 인지한 시점은 9월 21일이다. 국내 부품업체 중 한 곳이 “일부 업체가 평균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해외기관에서 보증서를 받아 온다”고 제보한 것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수원에 등록된 부품업체만 수백 곳”이라며 “납품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서로 문제점을 들춰내 제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외부 제보가 있기 전까지 부품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수많은 부품을 자체적으로 일일이 검증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한 곳도 아닌 8개 회사가 부품보증서를 위조하고, 납품업체들이 이를 서로 의심할 정도로 관행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수원이 이를 과연 모르고 있었던 게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 내부직원 연루된 제2 납품비리인가

검찰 수사도 한수원 내부에서 품질보증서 위조를 교사하거나 방조하지는 않았는지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 감사실 측은 “아직까지 한수원 전현직 직원이 사건에 연루됐다거나 8개 업체에 한수원 퇴직자가 재취업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올해 초 고리원전 비리 사건에 연루된 업체도 없다”고 덧붙였다.

외부 제보가 확인된 뒤 정부와 한수원이 이 문제를 처리한 태도에 대해서도 늑장 대응, 미온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수원은 샘플 조사를 거쳐 위조가 의심되는 두 건의 보증서를 해외 검증기관에 직접 확인한 결과 지난달 19일 ‘위조된 보증서’라는 최초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일주일 뒤인 지난달 26일에야 지식경제부에 이 사실을 보고했으며, 위조 사실을 처음 인지한 시점부터 5일 원전 가동을 중단하기까지는 보름 이상 시간이 걸렸다.

또 정부는 엉터리 부품이 사용된 원전 중에서도 영광 5, 6호기는 가동을 중단했으나 영광 3, 4호기와 울진 3호기는 위조부품 사용이 적고, 운전 중 교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지경부와 한수원은 이번 품질보증서 위조 사건이 최근 원전 고장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으나 실제로 고장이 일어난 시기와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상할 정도로 최근 고장이 잦아졌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고장 건수 9건은 지난해(7건)와 2010년(2건)을 합한 것과 같다. 특히 올해 고장 9건 중 8건은 7월 30일 이후 3개월 사이에 일어났고, 이 중 4건은 지난달 한 달 동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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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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