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세 고령인 데다 발기부전 약도 듣지 않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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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에다 심한 발기부전 증세를 보였다면 직접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

9일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청소년 성폭행 사건의 피고인 A 씨(71)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9세 여자아이가 15세로 자랄 때까지 수차례 성추행하고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검찰이 본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2004년 당시 9세였던 B 양(17)은 전남의 감나무 과수원 주인 A 씨를 유독 따랐다. B 양의 부모는 1996년부터 A 씨의 과수원에서 일해 왔는데 아버지는 소아마비를 앓은 지체장애 4급, 어머니는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이었다.

A 씨는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B 양의 환심을 샀다. 성추행하던 그날도 “공부를 시켜주겠다”며 과수원 옆 컨테이너 박스로 불러냈다. A 씨는 13세도 채 되지 않은 여아의 가슴과 음부를 만졌다. 그러고는 자신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게 하며 성추행했다.

B 양이 클수록 범행은 과감해졌다. A 씨는 B 양이 14세이던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세 차례나 성폭행했다. B 양은 검찰 조사에서 A 씨가 “몸 위에 올라와 성기를 삽입했고 20분 정도 성관계를 하다가 성기가 작아지면 그만뒀다”는 취지로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검찰은 “피해자의 보호자가 신체적으로 취약한 점을 틈타 신뢰관계를 빌미로 계속 범행한 만큼 또 성폭행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된 부분이 있었다. A 씨의 몸 상태였다. A 씨는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았다. 그는 “15년 전부터 발기가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일반적으로 당뇨병 환자의 40∼50%는 발기부전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치료를 받은 기록도 있었다. A 씨는 1995년 병원에서 당뇨병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2011년 1월부터는 한 대학병원에서 ‘시알리스’라는 발기유도제를 사용해 검사했지만 약도 듣지 않았다. 당시 병원 의사는 “발기 정도를 최대 4로 봤을 때 서 씨는 1 정도의 상태다. 심한 발기부전으로 질 내 삽입은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다. 발기유도제를 먹고 초음파 진단까지 한 결과였다. B 양이 마지막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2010년 1월’에서 불과 1년 지난 시점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성폭행을 할 정도로) 극도의 성욕을 느끼기 시작한 지 5분 내외의 짧은 시간에 질 내에 삽입이 가능한 발기 정도를 유지할 가능성은 없다”는 취지의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또 “직접적인 증거는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데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증명력을 가진 증거로 볼 수 없다”고 무죄 판단의 사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B 양 측에서 성폭행당한 증거로 제출한 질염 진단 역시 “꼭 성적 접촉이 아니어도 속옷 변기 수건에 의해 전염될 수도 있기 때문에 100% 성관계에 의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B 양 가족은 2010년 타지로 이사 갔다. B 양의 고모가 B 양에게 이야기를 듣고 신고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인 A 씨는 누나(81)와 함께 살고 있다. 누나는 “동생이 B 양 가족들을 15년 동안 보살펴 줬다”며 “B 양 부모가 받은 월급이나 장애지원금은 마을 이장이 관리했고 오히려 집을 짓는 데 보탬을 줬다”고 주장했다. B 양 가족이 이사 갈 때 통장에는 3000만 원 정도가 저축돼 있었다고 A 씨 누나는 주장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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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성폭행 혐의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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