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격화 시리아 접경을 가다]<1>천막에 고단한 몸 누인 난민들, 밤엔 총 들고 반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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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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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최남단 시리아 접경지대에 있는 시리아 난민캠프. 이곳에는 총탄과 포화를 피해 고향을 등지고 떠난 시리아 난민 6000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는 밤에 시리아로 넘어가는 전사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일라다으=이종훈 특파원 taylor@donga.com
터키 최남단 시리아 접경지대에 있는 시리아 난민캠프. 이곳에는 총탄과 포화를 피해 고향을 등지고 떠난 시리아 난민 6000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는 밤에 시리아로 넘어가는 전사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야일라다으=이종훈 특파원 taylor@donga.com
《 유구한 역사와 함께 ‘동양의 진주’를 수도로 갖고 있는 나라 시리아. 하지만 지난해 3월 시작된 반독재 시위가 정부와 시민 간의 유혈충돌과 정부군과 반군 간의 무장투쟁으로 격화되면서 시리아 국토는 핏빛으로 물들고 있다. 특히 42년 부자세습 정권을 이끄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독재 항거세력을 모두 소탕하겠다고 나서면서 시리아는 사실상 내전상태로 접어들었다. 현재까지 숨진 사람만도 1만9000명 이상이고 터키 요르단 레바논 등 이웃 국가로 탈출한 난민은 12만 명을 넘어섰다. 시리아 내전의 생생한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시리아 접경 지역과 주변국 난민수용소를 동아일보 특파원이 찾았다. 》
시리아 소년 무함마드(12)를 만난 곳은 섭씨 35도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터키 남부 하타이 주(州) 최남단 야일라다으 시(市)에 있는 난민캠프 부근에서였다. 25일 주도 안타키아에서 야산과 벌판 사이의 먼지 풀풀 나는 도로를 한 시간 남짓 달린 뒤였다.

눈이 큰 무함마드는 두 달 전 누나와 함께 부모를 따라 고향 라타키아를 떠나 이곳에 왔다.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한때 피신했다는 소문이 돈 지중해 연안도시다.

“사촌 동생이 정부군의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죽는 걸 바로 옆에서 봤어요. 순간 몸이 얼어붙었죠.”

며칠 뒤 부모는 무함마드와 함께 고향을 등졌다. 내전이 한층 더 격화되고 있지만 무함마드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 집과 친구들이 그곳에 있잖아요. 여기는 크게 불편한 것은 없지만 친구들이 없어 재미없어요. 어차피 이곳은 내가 살 곳이 아니잖아요.”

무함마드의 안내로 찾은 난민캠프는 접근이 어려웠다. 캠프 외벽에는 높이 2m가 넘는 짙은 파란색 천이 둘러쳐져 있었다. 도로에는 수십 m 간격으로 경찰이 보였고 정문에는 무장 군인이 지켰다. 경찰이 지키지 않는 야산으로 올라가니 족히 1000개는 되는 하얀색 텐트의 물결이 보였다.

오후 5시가 넘었는데도 더위가 가시지 않은 탓인지 텐트 밖에 나와 바닥에 천을 깔고 앉아 있거나 의자 위에서 쉬는 난민이 많았다. 한 귀퉁이에서는 어린이들이 공을 갖고 축구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 9월 터키가 처음 난민캠프를 언론에 공개했을 때 소개된 아파이딘 난민캠프.
어린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터키신문 제공
지난해 9월 터키가 처음 난민캠프를 언론에 공개했을 때 소개된 아파이딘 난민캠프. 어린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터키신문 제공
터키로 넘어온 시리아 난민 4만6000명 중 6000여 명이 이 캠프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저녁에는 시내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주로 찾는다는 공원에서 난민들을 만났지만 ‘카메라를 든 동양인’ 기자를 보고 극도의 경계심을 나타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손사래를 치거나 자리를 떠났다. 난민은 외부 출입이 자유로웠지만 터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터키 주민 역시 이들을 편하게 대하지는 않는 듯했다. 난민촌 옆에서 밭농사를 짓는 터키 남성은 “저 사람들을 어떻게 돌려보내야 하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시내의 한 가게 주인은 “난민촌의 성인 남자의 적잖은 수가 반군에 가담해 밤에 국경을 넘어가 전투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곳서 국경까지는 불과 4∼5km. 터키 정부도 이를 묵인한다는 얘기다. 레제프 찰르시칸 부시장(57)은 본보에 “터키 정부는 텐트마다 침대 TV 냉장고 전기난로 세탁기 등 모든 편의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찾은 또 다른 난민촌의 분위기는 달랐다. 안타키아 동쪽 20km 지점의 아파이딘 캠프는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떠 있는 외딴섬 같았다. 인가나 마을도 없었고, 난민도 보이질 않았다. 난민촌은 겹겹의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멀리서 얼핏 보기에도 흰색 텐트가 2000개가 넘었다.

기자가 캠프 정문 앞을 지나다 차량의 유리창을 내리고 사진을 찍자 총을 든 경비병이 30m나 쫓아와 “주지사의 허락 없이는 난민 캠프의 쓰레기 사진 하나도 찍을 수 없다”며 위협했다. 통역가이드가 “캠프에 난민이 몇 명 있느냐”고 묻자 그 병사는 “한 번만 더 질문하면 끌고 가겠다. 마지막 경고다”라며 기자 일행에게 소총을 겨누기도 했다. 한 주민은 “캠프 뒤편 산으로 더 들어가면 반군이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난민촌 쪽은 터키인도 거의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24일 찾은 안타키아 동쪽 54km 지점의 질베교주 검문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두꺼운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무장 군인 20여 명과 경찰이 철문 안팎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터키 기자는 “이틀 전 반군에 가담하려고 온 리비아 출신 용병과 반군 150명이 국경 지역에서 알라위파 운전사들을 폭행하고 트럭들을 불태우자 시리아 정부군이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헬기를 국경에 띄웠다. 이에 맞서 터키군도 전투기 2대를 발진시켰다”고 말했다. 지방 일간지들은 “23, 24일 연속 질베교주 검문소의 시리아 국경 쪽에서 포격 소리가 멈추지 않아 터키 군이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벗어나 터키 최남단 국경 지역으로 가다가 식당에 들렀다. 수니파 출신의 식당 주인은 “수니파는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하지만 미국 등 외세가 무력 개입할 경우 반군 편에 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을 위해 움직일 미국과 서방은 절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종훈 특파원
이종훈 특파원
안타키아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산꼭대기의 테크네지크 국경검문소. 건너편의 시리아 마을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역이 일주일 남았다는 한 병사는 “시리아 반군과 정부군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며 “시리아 군이 터키 전투기를 격추해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됐던 곳이 여기에서 1km도 안 된다”고 말했다. 터키와 시리아 국경은 대부분 산등성이에 있었고 철조망조차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오로지 살기 위해 고향과 모든 걸 버린 시리아 난민이 그나마 어렵지 않게 탈출할 수 있는 이유였다.

야일라다으·안타키아(터키)=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시리아#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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