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 기자의 여기는 칸] 유준상 “엉성한 영어 대사가 빵 터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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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6일 07시 00분


영화 본 외국인들 만나면 대사 흉내 내
“홍상수 감독? 인생의 해답 주는 등대”


‘칸 국제영화제 100배 즐기기’를 써야 한다면 가장 적합한 배우는 유준상이 아닐까.

배우 유준상은 한 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한 손엔 두께가 6∼7cm는 족히 될 만한 노트를 손에 쥔 채 제65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칸의 곳곳을 쉼 없이 걷고 있었다. 노트에는 일기, 영화제 분위기를 그린 스케치, 간혹 떠오르는 문장과 시가 빼곡히 적혀 있다. 스무 살 무렵 시작한 메모 습관으로 거뭇한 손때 묻은 노트가 스무 권이 넘게 쌓였고 최근 이 기록을 모아 책 ‘행복의 발명’까지 펴냈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칸에서 유준상을 만났다. 이번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홍상수 감독의 ‘다른나라에서’ 속 해맑은 해안 안전요원의 미소와, KBS 2TV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훈남 남편’ 귀남의 호탕한 웃음을 갖고 있는 유준상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 광고까지 찍었다”면서 “하하!” 소리내 웃었다.

● 유준상·홍상수, 다른 듯 닮은…

유준상은 이번 영화에서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호흡을 맞췄다. 극중 그녀를 위한 노래도 즉석에서 작곡해 선물한다. 실제로 이 장면은 이번 영화제 공식 상영 때 객석에서 가장 많은 웃음을 자아냈다.

“영어 대사가 신선했어요. 제 엉성한 발음 때문인지 영화제에서 만난 외국 사람들이 영화 속 제 대사를 흉내내더라고요.”

유준상은 ‘하하하’와 ‘북촌방향’에 이어 3년 연속 홍 감독의 영화로 칸을 찾았다. 홍 감독은 유준상을 두고 “그가 가진 에너지가 있다”며 “배우가 큰 자극을 주기도 하는데, 그 에너지가 영화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준다. 유준상은 기분 좋아지는 힘을 가졌다”고 말했다.

유준상은 ‘다른나라에서’ 촬영 때는 물론 칸에 머무는 지금도 홍 감독과 함께 방을 쓴다. “둘 다 코를 골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신뢰를 쌓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제가 인생에 던지는 질문을 감독님이 알아채 답을 주는 느낌이에요. 속 시원한 대답이 아니라 영화 속 상황이나 대사로 말이죠. 감독님은 저에게 라이트 하우스(등대)? 하하.”

유준상이 ‘등대’ 이야기를 꺼낸 건 그가 최근 책을 출간한 이유와도 같다.

“어른이 되기 싫고 어떻게 하면 소년의 마음을 유지할까 고민이죠. 다행히 드라마 덕분에 40대 중반이 되어가는 이 나이에 ‘꽃중년’ 소리도 듣지만. 소년의 마음을 유지하는 건 말이 안돼요. 영화에서 안느(이자벨 위페르)가 계속 등대를 찾는데, 그럼 내 등대는 뭐지…?”

● CF 보고 극장에서 박수 터져 “인기 실감”

칸에서도 유준상은 이메일로 받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 대본을 외우고 있다. 유준상은 이 드라마에 힘입어 최근 ‘국민남편’으로 등극했다. 광고 모델 제의도 쏟아진다.

“깜짝 놀, 랐, 습니다! 얼마 전에 광고를 찍었잖아요. 극장에서 나올 때 여성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다더라고요. 웃겨요. 초등학생 아이들이 오빠라고 부르는데 감당하기 어렵죠. 저도 초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인데. 중학생 팬도 오빠라고 해요. 옆에 있던 그 학생 아빠보다 제가 더 나이가 많아요. 우리 아이들만 빼고 다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올해 유준상의 발걸음은 한층 빨라진다. 여름께 항공 블록버스터 ‘리턴투베이스’가 개봉하고 가을에는 또 다른 주연작인 ‘터치’로 관객과 만난다. 7월부터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 ‘전설의 주먹’ 촬영을 시작한다.

가히 ‘유준상의 전성시대’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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