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신숙자씨 사망”]정부 “증거 내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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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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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산하기구에 답변서“두 딸은 살아있지만 아버지와 만남 원치않아”

북한 요덕수용소에 수감 중인 신숙자 씨(왼쪽)와 큰딸 혜원 씨(오른쪽), 작은딸 규원 씨(가운데)의 모습. 1991년 작곡가 윤이상 씨가 신숙자 씨의 남편 오길남 박사에게 건넨 사진이다. 동아일보DB
북한 요덕수용소에 수감 중인 신숙자 씨(왼쪽)와 큰딸 혜원 씨(오른쪽), 작은딸 규원 씨(가운데)의 모습. 1991년 작곡가 윤이상 씨가 신숙자 씨의 남편 오길남 박사에게 건넨 사진이다. 동아일보DB
북한이 ‘통영의 딸’ 신숙자 씨가 이미 사망했고 두 딸 오혜원·규원 씨는 살아있으나 아버지인 오길남 씨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 씨의 생사를 확인해 한국으로 송환하라는 국내외의 촉구에 침묵하던 북한이 이에 대해 내놓은 첫 공식 반응이다.

오 씨와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는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의 북한 답변서 전문을 공개했다. 이는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이장곤 차석공사가 지난달 27일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에 보낸 A4용지 반쪽짜리 영어 답변서다.

북한은 답변서에서 “오길남 씨의 전처인 신숙자 씨는 1980년대부터 앓아오던 간염으로 사망했고 두 딸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오 씨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다”며 “딸들은 오 씨를 상대하는 것을 거부했고 더 이상 괴롭히지 말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신 씨 모녀의 북한 억류에 대해 “임의적 구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최고의 배려를 담은 새로운 확답을 수용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답변서는 유엔인권이사회 실무그룹이 3월 1일 오 씨와 ICNK의 요청으로 신 씨 모녀의 생사 확인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앞서 북한 조선적십자회는 2008년 대한적십자사의 실종자 생사 확인 요청에 “신숙희(당시 북한 표현)는 연락이 두절됐고 두 딸은 살아있다”고 답한 바 있다.

북한은 답변서에서 신 씨의 정확한 사망 일시와 경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또 신 씨를 ‘전처’라고 표현해 오 씨와 혼인관계가 끝났음을 시사했다. 이에 오 씨는 “아내가 과거 간염을 앓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에 머물 당시 완치됐다”며 “아내가 언제 어디서 죽었고 어디로 끌려 다니며 살았는지 언급이 안돼 통보문 자체에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ICNK를 이끌어온 하태경 국회의원 당선자도 “북한은 신 씨가 사망했다면 언제 어디서 사망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유해도 한국으로 송환해야 한다”며 “두 딸도 본인의 자유의사를 확인해 제3국에서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ICNK는 3일 신 씨 사망을 증명하는 자료와 두 딸이 구금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북한에 추가로 요구해 달라는 의견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ICNK는 오 씨 부녀의 제3국 상봉도 성사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 北, 통영의 딸 사망일시-장소도 안밝히고 ‘더 거론말라’ 통보 ▼

정부도 신 씨의 사망을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고 두 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신 씨 문제는 지금까지도 정부가 관심을 갖고 유엔을 통해 측면 지원해온 사안”이라며 “정부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일단 북한 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있어야 하므로 사망증명서 같은 입증 자료를 구하는 일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이 내놓은 답변서는 오 씨 개인의 질의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유엔인권이사회 실무그룹을 통하기는 했지만 형식이 개인 진정에 대한 답변이어서 정부는 그 내용을 공식적으로 통보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다만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납북자 문제를 포함해 이런 사안에 대한 정부나 국제사회의 생사 확인 요청에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것은 처음이라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를 북한의 전향적인 대응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북한이 더는 문제 삼지 말라는 식으로 이번 건을 완결지어 버리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신 씨의 사망 여부만큼 관심을 끄는 부분은 두 딸의 근황이다. 북한 답변서에 따르면 이들은 일단 생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북한이 이들을 강제수용소에서 빼내 다른 곳으로 옮겼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이들이 오 씨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고 만남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북한 당국이 오 씨와의 만남을 막기 위해 임의로 지어낸 답변일 수 있다.

북한이 신 씨의 두 딸을 체제 선전도구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북한이 혜원 규원 씨에게 문서대로 아버지를 비판하라고 할 가능성이 100%다. 이들을 전 세계에 공개해 오 박사를 파렴치한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엔인권이사회 실무그룹은 신 씨의 두 딸에 대한 북한의 소명이 불충분하다고 보고 추가 정보를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그룹은 당사국이 보낸 답변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결정하는 절차를 통상 1개월 안에 마무리한다. 4일 실무그룹 전체회의가 열린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2, 3주 안에 공식 입장이 나올 예정이다. 실무그룹은 회의 결과가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높은 권한을 가진 기관으로 평가받는다. 이 기관이 신 씨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만으로도 북한에는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신 씨 모녀 사건은 지난해 통영에서 ‘통영의 딸 구하기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국내외의 큰 관심을 모았다. 통영에서 태어나 자란 신 씨는 1960년대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됐다가 유학생인 오 씨를 만나 결혼해 두 딸을 뒀다. 부부는 1985년 두 딸과 함께 북한으로 갔고 남편 오 씨만 1986년 북한을 탈출한 뒤 신 씨 모녀는 정치범수용소에 한동안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북한#신숙자#오길남#통영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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