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선거인단 부정’ 호남 이어 수도권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민주 ‘선거인단 부정’ 호남 이어 수도권 확산
나주화순-김제완주-광명갑 알바동원 대리신청 등 의혹
예비후보간 폭로전 이전투구

광주 동구 주민의 투신 자살로 촉발된 민주통합당 4·11총선 국민경선 선거인단 불법 모집 논란이 호남에서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부 지역에선 선거인단의 핵심인 모바일 선거인단의 불법 모집 여부를 놓고 이전투구식 폭로도 이어지고 있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며 도입한 국민경선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한명숙 대표 등 친노(친노무현) 지도부 출범의 일등공신이던 ‘엄지(모바일) 혁명’이 이젠 친노 지도부를 옥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선거인단 모집 마지막 날인 29일에는 막판 불법 모집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 광명갑에선 공무원들에게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 ‘공무원의 당 내 경선 참여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및 당규를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지역에서 출사표를 낸 김진홍 민주당 예비후보는 28일 이 지역 현역이자 광명시장을 지낸 같은 당 백재현 의원이 27일 오전 11시 45분경 “법률위반 사항이 아니니 안심하고 등록해 주시고 모바일로 투표하기 때문에 시간 낭비도 없습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광명시 공무원 1300여 명에게 보냈다고 폭로했다. 백 의원 측은 이날 오후 김 후보의 항의를 받고 이 메시지 내용을 취소하는 메시지를 두 차례 더 보냈다. 그러나 김 후보는 “광주 동구에서 선거인단 모집과 관련해 (주민이) 안타깝게 죽음을 맞은 상황에서 경선이 불리할 것을 염려해 공무원의 관권선거를 획책했다”고 주장하며 백 의원에 대해 당 공명선거분과위원회에 고발장을 냈다.

[채널A 영상]야심찬 모바일 선거, ‘부정’으로 얼룩져

비슷한 시간 전남 나주-화순에선 선거인단 불법 대리신청 의혹이 제기됐다. 이 지역 현역인 민주당 최인기 의원 측은 이날 같은 당 박선원 예비후보 측이 개인정보를 이용해 선거인단을 대리신청하다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 측은 25일 개인 정보 당사자들에게 발송된 개인 인증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하다 신고를 받은 경찰에 덜미를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원 측은 “경선 선거인단 대리신청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만큼 명백한 해당(害黨) 행위”라며 박 후보의 사과를 요구했다.
▼ 개인정보 건당 1000원… “3만명 명단 있다” 줄대기 경쟁… ▼

전북 김제·완주에서는 민주당 최규성 의원이 미성년자를 동원해 선거인단을 대리신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조사 중이다. 스스로를 ‘민주당을 사랑하는 완주군 민주당원’이라고 밝힌 이 지역 민주당원들은 28일 성명을 내고 “최 의원의 정치 생명은 불법 선거인단 모집에 동원된 어린 학생의 진술에 달려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닥치고 물러나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미성년자인 S 군은 최근 전북 완주군 용진면의 최 의원 사무소에서 교육을 받은 후 공중전화로 민주당 콜센터에 경선 선거인단 등록을 하다가 현장에서 적발됐다.

이에 앞서 21일 전남 장성에서는 시간당 4500원을 받고 모바일 선거 대리신청 아르바이트를 한 혐의로 고교생 5명이 경찰에 붙잡혔고, 광주 북구에서도 한 장애인시설에서 선거인단 불법모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신고를 경찰이 접수해 조사 중이다.

○ ‘공천이 곧 당선’인 호남에선 더 혈안


이처럼 호남 전역은 물론 경기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경선 선거인단 모집 논란이 불거진 것은 민주당이 ‘공천 혁명’이란 브랜드를 내세우면서 후보들이 선거인단 늘리기에 다걸기(올인)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쉬운 투표’라는 점을 내세워 모바일 경선을 민주당의 ‘간판 정치 상품’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실제로 28일까지 민주당이 모집한 경선 선거인단은 86만5000여 명이며 이 중 모바일 투표 선택 비율은 약 70%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공천이 곧 당선’인 호남에선 선거인단 모집에 더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선거인단 모집에 관여한 주민이 투신해 사망한 지역(동구)이 포함된 광주에선 선거인단으로 언제든 전환할 수 있는 3만 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는 전직 관변단체 인사를 대상으로 예비후보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개인정보 건당 800∼1000원씩 거래되고 있다는 게 선거캠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민주당 소속의 강운태 광주시장은 28일 논평을 내고 “선거인단 모집과 관련해 (광주 동구에서) 발생한 이번 사태는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시행 중인 국민경선제의 순수한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일이며 깨끗한 선거, 정치개혁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특히 공공건물이 탈법적인 선거운동 장소로 악용된 데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광주 동구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도 “이번 사건 현장에서 행정관청이 아니면 입수할 수 없는 가구주 명부와 조직책임자 현황, 동향보고 문건 등이 다수 발견된 사실로 미뤄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에 공조직이 개입한 흔적이 짙다”고 말했다.

광주에 사는 장모 씨(48)는 “국민경선을 공천혁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당이 조직동원과 불법을 부추긴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한 호남지역 중진의 보좌관은 “이제 와서 모바일 경선의 문제를 거론하면 반개혁적 인사로 몰릴 것이 걱정돼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28일에도 광주 현지에서 정장선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 활동을 이어갔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했다.

새누리당 권영세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의 모바일 경선은 불법 경선, 돈 경선, 동원 경선의 극치이며 민주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민주당이 정치 개혁을 원하는 당이라면 불법 모바일투표 전체에 대해 검찰에 수사의뢰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