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울지마 톤즈’ 빈민촌의 코리안]<5> 브라질서 교육봉사 우경호-강순옥 씨 부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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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절도에 빠진 아이들에게… 축구공-컴퓨터로 꿈을 불어넣다

브라질 상파울루 주 이타페바 시 외곽 산타마리아 마을에 있는 우경호 씨의 어린이개발센터 내 축구장에서 에우시우(24), 우경호 씨와 부인 강순옥 씨(49), 니콜라스(25), 조나탄(10), 그레고리(10·이상 뒷줄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가 함께했다. 약물과 범죄의 고리를 끊은 에우시우와 니콜라스는 각각 교사와 선교사가, 조나탄과 그레고리는 네이마르 다 시우바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기아대책 제공
브라질 상파울루 주 이타페바 시 외곽 산타마리아 마을에 있는 우경호 씨의 어린이개발센터 내 축구장에서 에우시우(24), 우경호 씨와 부인 강순옥 씨(49), 니콜라스(25), 조나탄(10), 그레고리(10·이상 뒷줄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가 함께했다. 약물과 범죄의 고리를 끊은 에우시우와 니콜라스는 각각 교사와 선교사가, 조나탄과 그레고리는 네이마르 다 시우바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기아대책 제공
1월 13일 낮 12시.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라갔다. 전날까지 내리던 ‘슈바 지 자네이루’(현지어로 1월의 비)는 그쳤다.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에서 서쪽으로 300km 떨어진 소도시 이타페바 외곽의 산타마리아 마을에 햇볕이 내리쬐었다.

“봉지아.” 반백에 주름진 얼굴의 유송 히베이루 다 시우바 씨(52)가 ‘좋은 날’을 뜻하는 포르투갈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에게 오늘은 확실히 좋은 날이었다. 유송 씨 뒤편으로, 이 마을 다른 집이 그렇듯 널빤지로 허술하게 짠 15m² 크기의 집이 보인다. 피사의 사탑처럼 서쪽으로 15도쯤 기울어 금방 쓰러질 것 같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유송 씨의 큰딸 오우가(12)가 그 안에 누워 있었다. 위험한 집을 대체할 벽돌집을 짓는 공사가 9일 시작됐다. 아침나절부터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던 우경호 씨(52·기아대책 기아봉사단)가 모자를 벗었다.

1999년 3월 우 씨는 부인 강순옥 씨와 두 아들 은성(당시 9세) 은표(6세)를 데리고 상파울루 구아룰료스 공항에 도착했다. 입맛이 없어 기내식을 거르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 닿은 우 씨는 열지도 않은 상파울루 한식당의 문을 두드렸다. 잠에서 깬 주인이 마지못해 전날 남은 재료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내왔다. 포르투갈어는 ‘아베세데(ABCD)’도 몰랐다.

상파울루에서 차로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타페바 시 산타마리아 마을은 6·25전쟁 직후 한국을 연상케 했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하수도도 없었다. 아니, 질퍽한 마을 자체가 거대한 하수도를 연상시켰다. 마을 서남쪽에는 이타페바 시와 인근 도시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매립장이 있었다. 아이들은 책보다 약물과 절도에 더 익숙해 있었다.

우 씨는 출국 전 이곳 빈민들에게 선진 농업기술을 전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막상 현지에서는 대규모 농장주들이 기계를 앞세운 기획농업을 하고 있어 소작농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우 씨는 농기구 대신 축구공을 집어 들었다. 답은 산타마리아의 ‘머리’에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앞머리만 동그랗게 남긴, 브라질 축구 영웅 호나우두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변변한 축구공 하나 없었다. 마을에 면한 쓰레기매립장에서 주운 누더기 공을 맨발로 차며 노는 게 아이들이 말하는 축구의 전부였다. 발에 철사와 못에 긁힌 상처가 없는 아이가 드물었다.

그는 처음 맡아서 운영하던 마을 탁아소 옆 공터로 아이들을 모았다. 마을 주민 중 축구 잘하는 사람을 감독으로 세우고 소시지빵을 나눠주며 제대로 된 볼을 차게 했다. 2003년까지 탁아소와 축구교육을 병행하며 아이들에게 ‘배우는 재미’ ‘꿈꾸는 재미’가 뭔지를 가르쳤다.

4년간 아이들과 살을 맞대며 거리를 좁힌 그는 이후 어린이 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마을 한쪽에 마련한 어린이개발센터에 강의실을 만들고 영어 수학 컴퓨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곳 학생들은 고교생까지도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하는 탓에 하루의 대부분은 집 밖에서 방황했다. 방과후 교육을 받는 대도시 아이들과 달리 이곳 청소년들은 마약과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었다. 시간은 많고 갈 곳은 없는 아이들이 센터에 몰려들었다. 중학 졸업장도 받기 힘들었던 이곳 아이들 사이에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1년까지 다섯 명이 대학에 들어갔다.

센터 출신으로 파피치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니콜라스(25)는 어려서부터 축구에 재능이 탁월했다. 열네 살 때부터 동네 형들과 어울리며 본드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20세가 될 때까지 코카인에 이르기까지 손대지 않은 약물이 없을 정도로 중독됐다.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를 일삼았다. 우 씨와 센터의 도움으로 어렵게 범죄와의 고리를 끊은 그는 지금 축구교사의 꿈을 꾸고 있다.

플라비아(19·여)는 ‘산타마리아의 기적’으로 불린다. 브라질 최고의 국립대이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학인 상파울루대 입학시험에 최근 1차 합격했다. 플라비아는 “예전에는 이타페바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센터를 통해 공부하며 100배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의 어머니 다우바 씨(36)도 딸을 따라 이곳 센터에 늦깎이 학생으로 합류해 현재 대학 컴퓨터 관련 학과 입학에 도전하고 있다.

우 씨는 산타마리아 마을에 이어 볼리비아에서 살길을 찾아 브라질로 건너온 빈민의 아이들을 보살피는 게 꿈이라고 했다. 미래를 바라보기엔 현실의 늪이 깊었다.

유송 씨 집처럼 무너져가는 이곳 판잣집들을 재건축하는 데만도 적잖은 돈이 든다. 우 씨는 이 집의 건립을 위한 교회 특별헌금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기준으로 정해진 활동비만으로는 살인적인 브라질 물가와 인건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자연재해가 적은 게 다행이지만 큰비가 올 때마다 걱정입니다.”

우경호 씨와 산타마리아 아이들의 이야기는 1일 오후 10시에 방영되는 채널A ‘뉴스A’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 임신 소녀… 코카인 소년… ‘불가촉천민들의 땅’ ▼
■ 극빈촌 산타마리아 마을


이타페바 시는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국제도시 상파울루 시 서쪽에 있는 인구 8만 명의 소도시다. 이타페바는 상파울루 주의 650여 개 도시 가운데서도 경제 순위 640위권을 맴돈다. 그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6km 떨어진 곳에 산타마리아 마을이 있다.

우경호 씨가 처음 찾은 뒤 13년간 이 마을은 정체돼 있었다. 마을에는 늘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을 서남쪽 쓰레기 매립장에서 나는 악취였다. 성인 남성들은 이곳에서 쓸 만한 폐품을 주워다 팔고 여성들은 근처 도시로 나가 가사도우미 일을 해 자식들을 키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너무 빨리 어른이 된다. 10세가 되면 아미구(남자 애인), 아미가(여자 애인)를 만들어 쉽게 동침한다. 임신한 13, 14세 소녀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아이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중학교 때쯤 학교를 그만두기 마련이다.

산타마리아 마을의 한 아이가 화장실이 하나뿐인 집 주변에 홀로 서 있다. 이 아이의 집에는 가로 5m, 세로 25m 집터의 네 칸 집에 3대 34명이 모여 살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산타마리아 마을의 한 아이가 화장실이 하나뿐인 집 주변에 홀로 서 있다. 이 아이의 집에는 가로 5m, 세로 25m 집터의 네 칸 집에 3대 34명이 모여 살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이들은 좁고 어두운 단칸집에 7, 8명이 함께 자 콩나물시루를 연상시킨다. 어두운 집 안이 싫은 아이들은 본드에 맛을 들인 뒤 코카인에 이르는 약물중독의 늪에 빠져들기 일쑤다.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를 일삼고 경찰들은 이들을 때리고 감옥에 가두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타페바 시민들에게 산타마리아 마을 사람들은 접근금지령이 내려진 ‘불가촉천민’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약물과 절도, 살인사건이 지역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때를 제외하면 이 마을 이름이 시민들 사이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다. 이타페바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산타마리아 주변엔 얼씬도 말라”고 일렀다.

아름다운 지평선에서 유일하게 도드라진 서남쪽 언덕은 쓰레기매립장이다. 여기서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는다. 인근 도시의 과거를 먹고사는 이곳에서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 않다.

이타페바=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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