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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O2/내 인생을 바꾼 순간]강금실 전 장관의 ‘영세받던 날’

입력 2011-09-03 03:00업데이트 2011-09-0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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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마저 죽인 인간의 권력욕 공부하고 싶어요”
영세를 받고 난 후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권력의 근원을 탐구하고 있다. 권력은 인간도 국가도 아닌, 그 너머의 어떤 정신적인 영역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만큼 힘들었다. 성경 공부를 지도했던 이경상 신부는 “아무래도 받는 게 좋겠다”며 거듭 영세(領洗)를 권유했다. 당신처럼 성경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드물다면서. 마음속으론 예수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이 등을 돌리고 십자가로 내몰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용서를 말했던 예수. 그러나 영세란 한 번 받으면 물리기 어려운 약속과 같은 것. 현실 권력의 핵심에 발 딛고 서 있던 강금실(54)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 달을 방황했다.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지 1년을 갓 넘긴 2004년 3월이었다. 》
○ 권력 안에서 변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2003년 10월 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장에 있던 그에게 쪽지가 전해졌다. ‘대통령, 재신임 묻겠다고 발표.’ 아득해졌다.

그에게 장관 첫해는 녹록지 않았다.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한총련 문제, 대선자금 수사 특검, 송두율 사건,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징계 청구 등 신경 써야 할 사건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법관의 기수 서열을 파괴하며 파격적으로 임명된 첫 여성 법무장관인 그로서는 구성원의 마음을 얻으면서 조직을 장악할 틈을 얻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재신임을 들고나온 것이다. “대통령이 그렇게 하면 참모들이 자리를 못 잡아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관료들은 다 흔들려 버리지요.” 또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2004년 17대 총선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수장이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조직은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4년 2월 검찰 정기인사가 연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당연히 정기인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검에서는 17대 총선(4월)을 앞두고 있어 연기해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대검의 손을 들어줬다. 장관이 자신의 핵심 권한인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검찰개혁의 직접적 수단 중 하나인, 인사를 통한 구성원 재배치가 무산된 것이다. 충격이었다. 그러곤 곧바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는 그해 7월 물러났다. “웃기는 장관이 된 거예요. 계속 자리를 못 잡다가 가버린….”

장관 첫해, 이런 큰 사건들을 거치고 갈등하면서 그의 내면은 매우 예민해져 갔다. 안 그래도 그의 40대 삶은 불안과 방황으로 갈팡질팡했다. 이혼과 그에 따른 10억 원대의 빚, 그 외의 각종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던 터에 한 국가의 가장 깊고 강력한 권력의 영역에서 사람들이 벌이는 권력 갈등을 실감하면서 ‘진정으로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고심했다. 그때 찾아든 것이 예수의 모델이었다.

2002년, 선배 법관인 이영애 현 자유선진당 의원의 권유로 법조인 예비교리반에서 이경상 신부에게 성경을 처음 배울 때만 해도 그저 막연한 관심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의 삶이 독특하다, 공부하고 싶다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예민해질수록, 예민해져 있기에 마음이 열렸다. 더 큰 울림과 깊이로 받아들이게 됐다. 마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한동안 울음보가 터지는 것처럼. 2004년 4월 부활절에 그는 ‘에스더’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법무부에서 그렇게 몰리지 않았다면 내가 영세까지 받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내 밖의 사회적 삶이 법무부 장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면, 내 안도 영세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 같아요. 똑같은 현상이 내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일어난 거죠.”

○ 권력을 얻고 사랑을 잃는다면

강금실은 기질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정신적인 것에 갈증을 많이 느낀다고 말한다. 20대 때부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간을 해명하고픈 바람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이 영세를 받은 뒤로는 권력을 해명하고픈 욕구로 바뀌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풀어내려면 먼저 권력이라는 게 뭔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6년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고,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에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치르면서 법무부에서 느꼈던 고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늘 권력 앞에서 엉망이 되는 것일까.’ 인간의 뿌리 깊은 갈등은 권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절감했다. “욕심이에요, 놓지 못하는 거죠. 그걸 해명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공부를 하면 될까 고민하다 멘토 같은 이경상 신부에게 길을 물었더니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을 소개해줬다. 생명과 지구의 문제를 인문학, 철학, 우주론, 문명론 등을 통해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2008년 하반기부터 2009년 상반기까지 1년을 다니고 휴학한 뒤 이달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생명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영세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그전에는 마구잡이로 책을 읽었다면 이제는 ‘마음의 닻’을 내리고 공부할 수 있는 가닥을 잡았다고 할까요.”

권력을 명확하게 해명해낼 수 있을지는 자신도 모른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출발점은 ‘권력 문제를 해명하지 않으면 인간 세상의 불행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체험했던 권력 갈등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려고 하는 데서 비롯됐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람을 놓치고, 사랑을 잃어버렸다. 사랑을 밑바탕으로 하지 않는 권력은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남용되며 억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강금실은 사랑만을 이야기한 예수가 모든 권력으로부터 팽(烹)당한 사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권력을 바라보고자 한다.

해답은 멀지만 그 실마리는 어쩌면 가까운 데에 있을 수 있다. “우리 헌법 체제를 보면 대통령은 어느 정당 출신이건 간에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데 권력을 쥔 후에는 그걸 기억하지 못해요.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 편만 들죠. 모두 정치적 사고만 하고 있어요.” 헌법 체제에 이미 권력의 근원이 되는 보편적인 가치가 내재돼 있는데 정치인들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 “자기라는 존재, 별거 아니에요”

그는 앞으로 책을 다섯 권 쓰고 싶다고 했다. 석사·박사 논문, 회고록, 로맨틱한 내용을 담은 소설 형식의 에세이, 그리고 젊은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지금껏 어떤 삶을 선택하고 살아오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여성’이라는 정체성이었다. 그저 75학번 남자 대학생이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각이다. 그래서 많은 후배 여성세대에게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느낀다고 한다.

그럼 정치는? 어떤 영역에 대해 할 건지 말 건지 미리 정해놓을 필요는 없단다. 그러면서 한다면 기존의 통념이나 정치 패턴을 따라갈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대단한 줄 알지만 사실은 별거 아니잖아요. 내가 별거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지요.” 역시 쿨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제주도에서 태어난 걸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경북 경주 출신으로 서울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공부를 너무 잘해서” 별다른 고민 없이 1975년 서울대 법대를 들어가 1981년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첫 여성 형사단독 판사, 첫 여성 로펌 대표, 첫 여성 법무부 장관, 첫 여성 서울시장 후보 등을 거쳤다. 춤과 노래 솜씨가 뛰어나다. 현재 법무법인 원 고문변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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