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휘는 20대, 재정부담]현 세입-복지지출 유지땐 2008년이후 출생자 4억 부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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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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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프랑스는 사르코지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고등학생들의 시위로 세계의 시선을 끌었다. 연금재정 적자가 불어나자 퇴직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미루고 연금수령시기를 늦추는 것이 개혁의 뼈대였다. 은퇴세대들이 들고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거리로 나선 것은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기성세대들의 근로기간이 늘어나면 젊은 세대의 일자리가 줄고, 떠안아야 할 재정부담이 늘어난다며 연금개혁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일자리와 복지부담을 놓고 벌어진 전형적인 세대 간 갈등 표출이었다. 》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이런 세대 간 갈등 폭발이 머지않은 장래에 현실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대 갈등은 젊은층이 부모세대를 위해 떠안아야 할 재정부담을 거부하면서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 ‘꿈을 잃어버린 세대’ 현실화?

전영준 한양대 교수가 보고서에서 제시한 연령별 ‘순(純)재정부담’은 2007년을 기준으로 각 세대가 기대수명(80세)까지 내야 할 세금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다음 이후 받게 될 각종 복지혜택의 현재가치 합산액을 빼서 구했다. 0∼19세는 기대수명까지 세금을 내지 않는 기간이 최대 19년 포함돼 있어 재정부담이 최대치에 이르지 않는다. 수입이 생겨 생애 처음 세금을 내면서, 기대수명까지 가장 오랜 기간 세금을 내야 하는 20세의 재정부담이 1억4306만 원으로 정점에 이르게 된다. 특히 2007년에 20세(올해 24세)인 청년세대는 ‘베이비 부머’ 세대 등 기성세대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않던 짐을 평생 짊어져야 하는 첫 세대라는 점에서 부담은 더욱 크다. 2008년에 도입된 기초노령연금, 장기요양제도, 보장성이 높아진 국민건강보험 등 굵직굵직한 복지정책(entitlement program)에 소요되는 비용을 이들이 현 세대 중 첫 번째 주자로 가장 오랜 기간 부담해야 한다.

20세 이후부터 세금을 내는 기간이 점차 줄면서 순재정부담이 감소하다가 55세부터는 세금은 내지 않고 복지혜택을 누리는 구간으로 들어간다. 재정과 복지혜택은 세대별로 누군가 부담이 커지면 다른 곳은 혜택이 늘어나는 제로섬(zero-sum) 구조여서 젊은 세대들의 재정 부담은 장년층과 노령층의 복지혜택으로 돌아가게 된다. 급속한 고령화로 20∼29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가 2000년 25.5명에서 2020년 68.0명으로 늘어나고, 2030년에는 146.2명에 이르러 청년 1명이 노인 1.5명을 부양해야 한다. 젊은층의 재정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성과평가실장은 “청년층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시장경제의 활력이 떨어져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악순환이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미래세대는 더 암울


그나마 지금의 청년세대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전 교수는 현 조세부담률과 복지시스템을 유지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정부 복지지출을 감당하려면 국민들이 부담한 세금 외에 2007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6%의 재정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이런 재정부족분을 현재 세대가 세금을 더 내 해결하지 않고 일시에 2008년 이후 출생한 미래세대에게 전가할 경우 미래 세대 1명당 3억9716만 원에 이르는 순재정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2008년 이후 출생자가 평생 벌어들인 소득의 25%를 세금으로 내야 현재의 복지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문제가 심각하다”며 “20∼40대 생산인구일 때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연금 혜택을 받는 기간이지만, 이들이 정작 연금을 받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연금이 고갈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계는 현 상황이라면 2060년엔 연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지속가능한 재정시스템을 외면한 채 ‘무상 복지’라는 당근으로 유권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유럽 선진국에 비해 복지지출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만큼의 세금을 부담하지 않고는 나라 곳간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국민이 내는 세금과 사회보장비용을 합친 금액을 GDP로 나눈 국민부담률은 한국이 2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끝에서 다섯 번째이며, OECD 평균(33.7%)에도 훨씬 못 미친다. 이른바 유럽 복지강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은 거의 40%를 넘어서 50%에 육박하고 있다.

김용하 보건사회연구원장은 “복지지출에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등록금 낼 능력이 있는 가정에까지 반값 등록금을 지원하려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당장 고등학교 의무교육부터 시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현재 세대가 세금을 더 내 복지비용을 일부나마 부담하든지, 아니면 미래세대에 고스란히 넘길 것인지 정치적인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는 “골치 아픈 재정 문제는 20∼30년 후에나 현실화하기 때문에 지금은 모두 모른 척하고 있다”며 “정치는 기껏해야 4∼5년 앞을 내다보고 하는 것인데, 과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느냐’”고 말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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