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26>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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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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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모두 생식과 다산의 상징
‘힘을 돋우는 채소’로 성경에 기록

옛날 사람들은 이상하다. 오이에 정력을 북돋워 주는 힘이 있다고 여겼다. 또 오이를 생식과 다산의 상징으로 삼았다. 표현 방법만 다를 뿐 동양과 서양의 인식이 거의 일치한다.

오이가 힘을 돋우는 채소라고 믿었다는 기록은 성경에 나온다. 출애굽 이후 사막을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먹었던 오이, 수박, 부추, 양파, 마늘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민수기 제11장 5절에 보인다. 모두 정력에 좋다고 알려진 작물인데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에게 먹였다.

기원후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가 쓴 박물지에도 오이의 즙이 여성의 생리를 촉진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나온다. 과학적 검증 여부를 떠나서 옛날 서양에서는 오이가 생식에 좋다고 믿었던 것이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오이는 생식과 다산을 상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처녀가 오이를 먹고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고려 초의 도선국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라에 최 씨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마당에 큰 오이가 열렸다. 그 집 딸이 몰래 오이를 따먹더니 임신을 해 아들을 낳았다. 부모가 아비 없는 아이라며 숲에 버렸는데 딸이 몰래 숲에 가보니 비둘기가 날개로 아이를 덮어서 키우고 있었다. 이를 보고 아이를 다시 데려왔고 그가 자라서 승려가 됐는데 바로 도선국사다. 세종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내용이다.

오이와 관련된 출생 일화를 갖고 있는 인물이 또 있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최응(崔凝)으로 고려사에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최응을 임신했을 때 집에서 키우던 오이 줄기에 갑자기 참외가 열렸다. 이상하게 여긴 이웃이 궁예에게 이를 고발하니 불길하다며 아이를 낳으면 버리라고 했다. 하지만 최응의 부모가 아이를 몰래 키웠는데 나중에 장성해서 대학자가 되어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웠다.

오이는 이렇게 생식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는데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과년한 딸이 있다”는 말을 한다. 한자로 보면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과년(過年)은 나이가 들어 혼기를 놓쳤다는 뜻이다. 반면 과년(瓜年)이라고 하면 결혼 적령기의 여자라는 의미다.

과(瓜)는 오이라는 뜻의 한자인데 오이가 여자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과년이 결혼 적령기라는 뜻이 되었을까. ‘과’라는 한자의 가운데를 잘라서 둘로 나누면 팔(八)과 팔(八)이 된다. 이 둘을 더하면 열여섯이 되는데 여자 나이 열여섯 살인 과년은 옛날에는 결혼할 나이였기 때문에 결혼 적령기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시집보낼 나이의 딸을 둔 부모가 과년한 딸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는 실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말장난 같지만 송나라 때 시인 육유(陸游)를 비롯해 고문헌에 많이 나오는 단어다.

또 오이 과(瓜)를 팔(八)자로 둘로 쪼갠다는 뜻에서 열여섯 살을 파과기(破瓜期)라고 하는데 여자가 생리를 시작하는 때라는 뜻이다. 초경이 빨라진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열여섯 무렵에 생리를 했으니 곧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으로, 바꿔 말하자면 어른이 됐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라는 글자에는 오이라는 뜻 이외에 ‘익다’ ‘성숙하다’는 뜻도 담겨 있다. 이처럼 오이는 이래저래 정력, 생식, 다산과 연결된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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