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가계부채]대출로 산 집이 덫으로… 초저금리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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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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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상땐 ‘빚의 저주’… 한국판 서브프라임사태 덮치나

《 주부 김모 씨(35)는 남편과 맞벌이를 해서 모은 종잣돈과 시부모님에게서 빌린 돈으로 3년 전 경기 파주시에 93m²짜리 아파트를 샀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왜 그랬을까’ 후회가 크다. 1억9400만 원이던 아파트 시세가 1억6000만 원으로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투자는 부동산’이라는 생각에 아파트에 ‘다 걸기(올인)’했다가 매일 부동산 시세만 확인하며 팔아버릴 날을 손꼽는 신세가 됐다”고 털어놨다. 아파트를 담보로 빌린 8000만 원이 더 걱정이다. 신문에서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뉴스를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16년간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며 큰빚을 진 적이 한 번도 없는 양모 씨(43)는 최근 처음으로 가계부에 마이너스(―)를 긋게 됐다. 3년 전만 해도 2억1000만 원에 불과하던 서울 송파구의 112m²짜리 아파트 전세금이 올해 3억8000만 원까지 치솟은 것이다. 차를 바꾸려고 모았던 2000만 원, 자녀들 학자금으로 쓰려던 예금 4000만 원을 깬 것으로도 모자라 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다. 전세난에 자녀 학자금이 날아간 것은 물론 ‘채무자’가 되고 말았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대한민국 가계가 ‘빚의 굴레’에 갇히고 있다. 그 중심에는 부동산과 초저금리가 있다. ‘투자=부동산’이란 인식과 집 한 채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심리가 문제였다. 미국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금융위기를 겪은 것을 지켜봤으면서도 집을 장만하느라 빚을 늘렸다. 부동산 가치 하락 속에서도 전·월세 가격은 꾸준히 올라 은행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집이 서민을 빚에 가두는 덫이 된 셈이다.

○ 40대 이상 중·고령층과 저학력층, 노후에 빚잔치

전문가들은 40대 이상 중·고령층, 저학력층, 저소득층이 ‘가계부채의 뇌관’이라고 지적한다. 부동산 가치의 하락과 전·월세 가격 상승의 가장 큰 피해를 본 계층이라는 뜻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고, 이를 잡기 위해 금리도 잇달아 올라가고 있어 이들 부채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고령층은 대체로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아 부동산 가치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동아일보 경제부와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의 ‘가계자산 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인 2006년과 2010년 사이 가계의 자산은 40대가 2004만 원, 50대가 1395만 원, 60대 이상이 2585만 원 줄었다. 같은 기간 빚은 398만 원, 1245만 원, 56만 원이 각각 늘었다. 문제는 이들 세대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 노후자금 마련에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40대 이상 중·고령층의 악화된 재무상태는 단순히 가계부채의 문제를 넘어 고령화시대에 우리 경제의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고졸 이하의 저학력층도 빚을 갚는 데 노후를 보내야 할 공산이 크다. 이번 조사에서도 대졸 이상 고학력층의 경우 부동산 자산을 줄이면서 금융저축을 늘리고 있는 반면 저학력자는 금융저축을 줄이고 빚을 얻어 부동산을 늘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 저소득층, 빚 상환 불능에 빠질수도

부동산을 보유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은 무섭게 뛰는 전·월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저축액을 줄이고 대출을 늘리다 보니 부채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반지하 17m² 쪽방에 사는 택시운전사 김모 씨(58)는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을 줬던 이 쪽방이 헐린다고 해서 새 집을 구해야 하지만 주변 쪽방의 보증금이 1000만 원까지 뛰었기 때문이다. 그는 “월세는 물론 생활비도 모자라 은행 대출을 알아보고 있지만 신용등급이 워낙 낮아 거절당하기 일쑤”라고 울상을 지었다.

실제로 2006년과 2010년의 소득수준별 가계 재산(순자산)을 비교해보면 저소득층인 1분위와 2분위는 각각 1405만9000원, 2993만4000원이 줄었다. 반면 5분위 고소득층은 396만9000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더구나 거의 유일한 소득원인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해 돈줄이 끊길 경우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가계부채의 ‘시한폭탄’인 셈이다. 김현정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경기가 좋아지고는 있지만 고용 창출이 외환위기 전처럼 왕성하지 않기 때문에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 부채문제 연착륙 시급


세계적으로 물가가 널뛰고 기준금리가 계속 오르는 데다 전·월세보증금까지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가계 부채가 한국 경제의 숨통을 조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가계부채는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와 맞물려 있어서 과거 2003년 신용카드 대란(大亂) 때보다 파괴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의 연착륙 대책을 하루빨리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2006∼2010년 가계부채를 늘린 주요 원인이던 전·월세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안도 함께 제시돼야 앞으로 닥칠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가계부채 대책의 초점은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 날로 악화되고 있는 중·고령층, 저소득층 가계의 재무상태를 개선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며 “전세가격 안정과 전세제도 개선을 통해 전·월세보증금 수준을 안정화시키고, 여유자금을 금융저축액으로 돌릴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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