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드럭스 “애인을, 아내를, 남편을… 우린 왜 사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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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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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해.”
“왜?”
왜…라니.
보통은 쑥스러운 듯 입맛을 다시면서 “그냥” 또는 “당신이니까”라고 두루뭉술하게 답해 버릴 반문이다. 하지만 13일 개봉하는 ‘러브&드럭스’(18세 이상)는 이 적당한 대답이 무책임하고 무성의하며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고 냉랭하게 쏘아붙인다. 처음 함께 영화관을 찾아 달달한 분위기의 로맨스 영화를 즐기려 한 커플이라면 “연인들에게 사랑을 처방해 드린다”는 홍보 문구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편이 좋다. 사랑과 이별을 몇 번 건너 본 성인 남녀, 십수 년쯤 함께 살아온 부부가 둘이 함께 보거나 혼자 관람하기 적당하다. 옆자리의 이 사람과 나의 삶을 엮어놓은 것이 사랑인지 정(情)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새삼 헤아려 볼 계기가 될 것이다.》

도입부는 달콤하지만 시시한 로맨틱 코미디. 하지만 뒤로 갈수록 가볍게 달려든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그 사람을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선뜻 명쾌하게 답할 수 있다면 예외겠지만. 사진 제공 숲
도입부는 달콤하지만 시시한 로맨틱 코미디. 하지만 뒤로 갈수록 가볍게 달려든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그 사람을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선뜻 명쾌하게 답할 수 있다면 예외겠지만. 사진 제공 숲
초반부는 경박하다. 바람둥이 제이미(제이크 질렌홀)가 점원으로 일하던 오디오기기 판매점에서 음란한 행각을 벌이다가 쫓겨난 뒤 제약회사 ‘화이자’의 영업사원으로 취업하기까지를 그린 5분여의 이야기는 참고 앉아 봐주기 힘들 만큼 작위적이다. 그러나 대충대충 연명하던 한 남자의 후줄근한 삶이 느닷없이 만난 한 여인으로 인해 때때로 180도 뒤바뀌듯, 병원 진료실에서 제이미가 여주인공 메기(앤 해서웨이)를 만나는 순간 이 영화도 홱 방향을 튼다.

‘첫눈에 반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에 반했다는 걸까. 말 그대로 첫 ‘눈에’ 보인 얼굴, 외모인 것이 당연하다. 제이미와 메기도 마찬가지. 각기 쌓은 연애 내공이 만만찮은 두 사람은 짤막한 첫 스침에서 포착한 상대방의 매력을 며칠 뒤 카페에 마주 앉아 3분 남짓 확인한 뒤, 더 볼 것 없다는 듯 서로를 끌어안고 마음껏 탐닉한다.

선남선녀의 원 나이트 스탠드처럼 시작한 이야기는 속사정을 한 꺼풀 벗겨내며 슬쩍 무거워진다. 메기는 신경계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진지한 연애를 피한다. 과잉행동장애로 의대를 중퇴한 제이미 역시 만사가 무료하고 시시하다. 그런데 이 두 사람. 편하게 즐기는 사이라고 못 박았던 서로에게 문득 이상한 특별함을 느끼고 당황한다.

병으로 몸과 정신이 서서히 망가져 가는 여자가 남자에게 묻는다.

“나를 원해? 왜? 뭘 증명하고 싶은 건데? 날 사랑하려면…, 병이 나을지 확인이 필요해?”

고민에 빠진 이 남자에게, 병으로 몸과 정신이 망가진 아내를 평생 돌본 한 노인이 말한다.

“빨리 좋게 끝내고 건강한 여자를 만나요.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다시 겪긴 싫거든. 내가 사랑했던 아내의 모든 것이 사라졌소. 고운 심성, 미소…. 진짜 심각한 건, 대소변 문제지.”

누군가를 왜 사랑할까. 한 남자가 겪은 연애의 전말을 집요하게 재구성한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주인공 남녀가 찾은 ‘첫눈에 빠진 사랑’의 실마리 역시 기껏해야 ‘똑같이 왼쪽 발가락에 난 점 두 개와 똑같은 뒤쪽 어금니의 충치’ 정도였다. “끓어오른 희망이 자기인식을 압도하는 바람에, 상대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사랑”을 어떻게 납득해 지속할 수 있을까. 이것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결론은 제각각일 것이다. 제이미와 메기는 그들 나름의, 모호하지 않은 답을 찾는다. 그리고 객석의 연인들에게 포기하지 말 것을 응원한다. 알츠하이머를 앓아 기억을 잃으며 죽어가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비슷한 설정의 2006년 작 ‘어웨이 프롬 허’보다는 대중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결말이다. 불구가 된 연인을 무턱대고 끌어안는 지점에서 막을 내려버린 고전로맨스 ‘러브 어페어’와도 비교해서 볼만하다.

단점도 적잖다. ‘아무리 죽을병을 앓고 있다 한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싶은 해서웨이의 지나친 미모가 이야기의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최대 약점이다.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그가 왜 16일 열릴 제6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비아그라 등 화이자 상품을 간접 광고하는 영화라는 비난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사진이나 글로 기록하는 행복한 작업에 잠재된 서글픔을 담담히 보여주는, 어른들을 위한 속 깊은 동화임에는 틀림없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영화 `러브&드럭스` 제이크 질렌홀 속삭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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