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사라지는 ‘묘지 강산’

동아일보 입력 2010-07-15 03:00수정 2010-07-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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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기하게 여기는 풍경 중 하나가 엄청나게 많은 묘지이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노라면 크고 작은 무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매장은 인류의 오랜 풍습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망자(亡者)가 양지바른 땅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서양은 공동묘지가 대부분이고 묘지가 마을과 생활공간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풍수(風水)가 좋으면 가파른 산꼭대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상의 묘를 명당에 써야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풍수사상이 동양 3국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게 뿌리를 내렸다.

▷보건복지부가 대한지적공사의 항공사진과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묘지 면적이 여의도의 85배에 이르고 분묘 수는 1435만 기(基)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서울대에서 연구한 1978년도 자료를 근거로 분묘 수를 2000만 기로 추정해 왔는데 실제 분묘는 이보다 적었다. 그렇다 해도 지난 5년간 매년 8만 기의 분묘가 증가했다. 여의도 면적의 절반이 여전히 묘지로 변한 셈이다.

▷그러나 매장 선호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묘지 강산’은 축소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처음으로 화장률(52.6%)이 매장률(47.4%)을 넘어선 데 이어 최신 통계인 2008년 기준 화장 비율이 61.9%를 기록했다. 올해는 68.4%에 이를 것이라는 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추정이다. 화장률 99.9%인 일본에는 못 미쳐도 1970년대 10%였던 데 비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하다. 사회지도급 인사가 화장을 선택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종교처럼 강고하던 매장 선호가 줄어든 요인은 유교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등장일 것이다. 당장 살기도 힘든 형편에 값비싼 묘역을 매입하고 절기마다 벌초하고 제사 지낼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도시인의 삶 속에 없다. 여기저기 흩어진 4대나 5대 선조의 묘역을 찾아다니며 성묘하는 세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납골당의 증가와 무연고 묘지의 급증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한민족을 지배한 매장문화가 세월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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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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