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기업호민관은 신문도 안읽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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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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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특히 삼성에 대해 얘기할 언론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는 모두가 아는데,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얘기하지 못한다. 특히 제도권 언론이 그러하다.”

차관급 예우를 받는 이민화 기업호민관(중소기업 옴부즈맨)이 최근 자신의 트위터(twitter.com/minhwalee)에 올린 글이다. 개인 트위터지만 문패에 기업호민관이라는 직함과 그에 대한 안내가 있고, 이 호민관도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억울한 분들 사연을 모은다”며 그곳이 중소기업 애로사항의 접수창구임을 밝혔다. 그는 “용기 있는 제도권 언론사를 광야의 초인이 오듯 기대한다. 아니라면 결국 소셜미디어를 통한 대·중소기업 문제 해결을 추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며 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지난해 출범한 기업호민관은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대안을 마련해 담당 부처에 건의하는 조직으로, 예산은 중소기업청에서 받지만 운영은 독립적이다. 초대 기업호민관인 이 호민관은 벤처기업 ‘메디슨’의 창업주로 KAIST 초빙교수이며,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올해 1월에 대기업의 이른바 ‘후려치기’ 관행을 이틀에 걸쳐 상당한 비중으로 지면에서 지적한 기자는 이 호민관의 글에 어안이 벙벙했다. 7, 8일에도 한국일보 1면에 같은 문제를 지적한 기사가 실렸다. 이 호민관 자신도 매일경제신문에 ‘기업호민관 리포트’라는 이름으로 칼럼을 연재하는 중이다.

이 호민관은 평소에 신문을 잘 읽지 않는가? 자신의 칼럼에서는 하고 싶은 얘기를 못 하나? 언론을 문제 삼기 전에 주무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와 중기청을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닐까? 기자가 7일 통화에서 이 점을 묻자 이 호민관은 “언론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 삼성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던 것”이라며 말을 돌렸다.

기자가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관행을 취재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불이익을 두려워한 중소기업들이 취재를 피하는 일이었다. 이 호민관이 “모두가 아는 문제”라면서도 “억울한 분들 사연을 모은다”고 한 걸 보면 그도 구체적인 사례는 없는 것 같고, 지금까지 공정위와 중기청의 조사도 충실치 않았던 모양이다. 언론 탓을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이 호민관과 같은 태도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열정과 의욕은 높이 평가하나, 그의 언론관이나 상생협력에 대한 비전에는 찬성할 수 없다.

장강명 산업부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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