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하정규] ‘탑건’이 되기에는 아쉬운 ‘대한민국1%’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7일 14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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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남자도 버티기 힘들다는 해병대 훈련 과정을 1등으로 통과한 최초의 여자 부사관 이유미(이아이·가운데)가 군사 훈련 만년 최하위 팀인 3팀을 최고로 만드는 과정이 그려지는 영화 \'대한민국 1%\'
웬만한 남자도 버티기 힘들다는 해병대 훈련 과정을 1등으로 통과한 최초의 여자 부사관 이유미(이아이·가운데)가 군사 훈련 만년 최하위 팀인 3팀을 최고로 만드는 과정이 그려지는 영화 \'대한민국 1%\'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만한 안줏거리는 없다. 반면 여자들은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군대에서, 그것도 축구한' 얘기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영화 '대한민국1%'가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이런 여자 관객들을 유인하기 위한 전략일까?

해병대에서도 힘들다는 수색대에 최초로 지원한 여자 하사 이야기는 '지 아이 제인'과 같은 페미니즘적 요소로 시작하지만, 결국 자기희생과 팀워크를 강조하는 군인 정신을 주제로 한 정통 군인 영화로 귀결된다.

▶ 최초의 여자 해병 수색대원

해병대에서도 힘들기로 유명한 해병 수색대. 남자들도 지원을 꺼리는 이곳에 최초로 지원한 하사 이유미(이아이 분)는 동료 남자 부사관들의 냉대, 병사들의 조롱과 무시와 싸워야 하는 처지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팀장 지위를 얻지만 동료와 병사들의 냉대는 여전하다.

그러나 여성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은 차츰 병사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각종 훈련에서 만년 꼴찌였던 3팀의 실력은 그녀 때문에 높아져 간다.

한편, 장기 복무를 위해 중사 진급이 절실한 왕종팔 하사(임원희)는 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비겁한 수법으로 3팀장인 이유미 하사를 곤경에 빠뜨린다.

훈련 중 해안가의 보트를 떠내려 보냈다는 누명을 쓰고 혹독한 얼차려를 받던 이유미는 바닷속에서 정신을 잃게 되고, 그녀를 구해주는 상급자인 강철인 중사(손병호)는 그녀의 아버지도 군인이었음을 알고 놀라게 된다.
진급을 위해 자신의 1팀을 최고로 이끌어야 하는 왕하사(임원희 분)의 방해공작에 이유미 부사관과 3팀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진급을 위해 자신의 1팀을 최고로 이끌어야 하는 왕하사(임원희 분)의 방해공작에 이유미 부사관과 3팀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와 실감나는 대사들

이 영화에는 뚜렷한 스타 없이 신인과 조연급 배우들만 출연한다. 조연과 단역들의 연기는 별로 흠잡을 때 없이 훌륭하다. 여주인공도 특별히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모자라지도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실제 여자 하사관의 모습은 이럴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군대에서 실제로 일어날 법한 실감 나는 대사들도 훌륭한데, 특히 신참 하사, 그것도 여자인 주인공을 무시하고 길들이려는 병사들과의 갈등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또한 선임병과 후임병 간, 부사관들 상호 간의 위계질서와 갈등도 잘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이 섬세한 리더십과 끈기로 동료 부사관들의 무시와 시기, 병사들의 반항을 극복해 가는 과정도 깔끔하다. 결국 여러 갈등과 사건들을 극복하고 장난스럽게 진흙을 잔뜩 바른 건강하고 탄탄한 몸매의 해병대 병사들이 한데 뭉친 사진이 클로즈업되는 결말도 유쾌한 느낌이다.

▶ 진부한 스토리와 부족한 액션 장면

반면 첫 주연을 맡은 여자 주인공은 관객을 흡인할만한 카리스마와 개성이 부족하다. 결국 이것이 스타와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핵심 고리인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과거 사망 장면은 이런 영화에서 너무 뻔한 클리셰인 점도 그렇지만, 좀 더 독특하고 깊이 있는 스토리가 없는 점이 더욱 아쉽다. 결국 이유미가 이렇듯 어려운 해병대 수색대원이 되려고 한 것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한을 풀고자 하는 뜻인데, 과거사 내용의 깊이가 없으니 감정이입이 떨어진다.

액션 장면들도 많이 부족하다. 10억 원의 저예산 영화라니 이해는 되지만 좀 더 아이디어를 짜내서 해병대 수색대의 특성을 살린 보다 독특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액션이 추가됐어야 했다. 야간에 보트로 섬을 탈출하다 풍랑에 휩쓸리는 대목의 CG는 너무 조악하다. 부족하더라도 실사로 처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북한군과 맞닥뜨리는 부분도 좀 더 리얼하고 흥미로운 액션이 필요했다.

이유미 하사를 시기한 왕종팔 하사의 비열한 행위와 이로 인해 야기되는 강철인 중사의 희생적 죽음 등은 갈수록 너무 틀에 박힌 스토리로 전개된다. 결국 조연들의 호연에도 주인공의 카리스마 부족과 진부한 스토리, 부족한 액션은 너무 뻔한 방식으로 자기희생과 팀워크의 군인 정신을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군대 상영용으로 만든 '정훈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수색대 최초 여부사관 이유미와 만년 최하위 3팀은 사단급 훈련에서 최고의 팀이 될 수 있을까
수색대 최초 여부사관 이유미와 만년 최하위 3팀은 사단급 훈련에서 최고의 팀이 될 수 있을까

▶ 우 리도 '탑건'을 만들자!

전쟁영화가 아니면서 순수하게 군인정신을 그린 영화들도 많이 있는데, 필자의 머리에는 1980년대 고전이 된 '사관과 신사'와 '탑건'이 먼저 떠오른다. '사관과 신사'는 많은 액션은 없지만 부정을 저지른 사관생도와 이를 호되게 얼차려 시키는 교관간의 리얼한 갈등 묘사가 진한 인상을 주었다. '탑건'에서는 실력은 최고지만 말썽꾸러기 조종사역인 톰 크루즈가 'Take My Breath Away'를 배경음악으로 해군전투기 F14를 타고 보여준 화려한 공중전 장면 때문에 미국의 해군 지원율이 급증한 바 있다.

최근의 비극적인 천안함 사건은 국민들에게 신성한 국방의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정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반면 일부 젊은이들이 군 복무를 회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가 적발됐다는 얘기는 요즘도 심심찮게 나온다.

'공동경비구역'은 분단 상황에서 남북한 군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영화이다. '실미도'에는 정치권력에 의해 희생된 군인들이 나온다. '화려한 휴가'는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군인들에게 짓밟힌 얘기다. 그렇다면 이제 일반인들도 군인의 세계를 동경할 만큼 좀 더 독특하면서 멋진 군인 영화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젊은이들이 누구나 '대한민국 1%'가 되고 싶어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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