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용]의혹 자초하는 검역원의 대장균 기준 짜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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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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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취재를 시작한 건 지금 분유를 먹고 있는 8개월짜리 아들이 생각나서였다. A회사 제품의 분유에서 대장균군이 기준을 초과해 검출됐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나온 것인지, 기준은 얼마인지, 그 분유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지난해 적발했다는데 언론에는 왜 1월에야 보도가 됐는지…. 속 시원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기자이기 전에 아빠의 심정으로 파고들었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에게 물었더니 분유의 대장균군 검출 기준이 지난해부터 완화됐는데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본보 26일자 A2면 참조). 모든 부모가 아이들이 먹는 분유 속 대장균군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왜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을까, 기준이 완화됐다는데 왜 또 적발된 것일까. 담당 기관에 물어봤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기준 완화 사실을 인정하면서 “국제 기준에 맞추려고 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보내왔다. 검역원이 보낸 자료에는 호주와 뉴질랜드, 미국, 유럽연합(EU)의 대장균군 기준이 표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완화 이전 단 1마리도 검출돼서는 안 되는 한국의 기준에 비해 호주와 뉴질랜드, 미국은 일부 검출을 허용하고 있었고, EU는 아예 ‘관련 기준 없음’으로 돼 있었다.

검역원이 보내온 자료만 보면 우리나라의 기준이 너무 가혹했다. 국제 경쟁에서 우리 분유업체들이 손해를 보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완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왜곡’이었다.

취재를 더 해본 결과 검역원이 일본의 분유 기준을 아예 누락시킨 사실을 알아냈다. 일본은 과거 한국 기준과 마찬가지로 대장균군 검출을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EU는 검역원이 준 자료처럼 관련 기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장균군을 포함하는 상위 개념인 ‘엔테로박테리아’를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대장균군만 규제하는 것보다 더 강한 기준이다.

과연 전문가인 검역원 공무원들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 몰랐으면 직무 유기이자 자격 미달이다. 만일 알았다면 ‘국제 기준에 맞추려 했다’는 자신들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왜곡된 자료를 기자에게 보낸 것이다. 게다가 A회사 제품에서 대장균군이 검출된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도 개운치 않다. 이 때문에 ‘특정 업체를 봐주려 했던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런 공무원들을 믿고 우리 아이가 먹는 분유를, 더 나아가 식품 안전을 맡길 수 있을까. 오늘은 기자이기 전에 아빠로서 안타깝다.

김기용 산업부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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