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 이야기]기상전문가 오재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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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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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적응력이 시속 100㎞라면 온난화 속도는 1000㎞”

자연의 변화에 취약해진 문명이 문제
빌려쓰는 지구에 난장쳐도 되나 자괴

양자택일 사고에 익숙해진 한국인
비올 확률 50%라 하면 짜증부터 내

서영수 전문기자
서영수 전문기자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 멸망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티의 아비규환을 보면서 공포를 느낀 것은 기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폭설로 첨단 도시 서울이 며칠째 눈에 갇혔던 것도 자연 앞에 무력감을 느끼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상전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57·환경대기학과)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중국 쓰촨(四川) 성 대지진 때도 그렇고 아이티 지진 사태를 보면서 지구 종말이 가까워 온 것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웃음) 그것보다는 국가의 대응능력이 취약하면 국민들이 저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돈 있는 나라들은 면역이 되어 있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충격이 덜하다. 요즘처럼 기후변동이 잦은 시대에는 나라가 잘살아야 국민의 생존도 보장된다고 할까?”

“우리도 (지진에) 불안한 것 아닌가”고 했더니 “아이티는 화산대 바로 위에 있는 섬이라 우리와 다르다”는 답이 돌아왔다. “용암 위에 떠 있는 땅들이 마치 얼음이 깨지듯 조각조각 나 있는 게 지금 지도다. (아이티처럼) 땅끼리 서로 맞부딪치는 경계에 있는 곳이 위험지역이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밑에 보면 멕시코 쪽으로 반도가 있는데 그것이 조만간 떨어져 나간다고 본다. 워싱턴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캐나타 밴쿠버 모두 다 경계 위에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행히 경계 안쪽에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지진을) 예측할 수는 없나.

“움직임이 하도 느려 예측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가만히 있다가도 어느 순간 확 흔들리고 자리를 잡느라 또 흔들린다. 아이티 여진이 대표적이다.”

―예측하기 힘든 재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돈이 들기 때문에 준비에도 한계가 있다. 재해를 대하는 의식이 중요하다.”

―의식이라면…?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급격한 온난화 때문에 기후변동성이 커졌다. 도시화로 자연에 대한 면역력도 약해졌다. 이런 시대에는 재해 대응을 국가가 다 해주기 힘들다. 이제 천재지변을 나라만이 책임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오 교수는 재해를 대하는 우리 국민의 사고가 “사지선다형 찍기”라면 외국은 “논술형”이라고 비유했다. “우리는 확률적 상상력이 약하다. 비 올 확률이 50%라고 하면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짜증을 낸다. 맞나, 안 맞나 양자택일이 아니고 중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날씨에도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재해를 극복하는 데에는 돈(세금)이 든다는 것을 공감해야 한다. 얼마 전 미국 덴버에 있을 때 18일 동안 눈이 왔다. 제설담당 공무원이 TV에 나와 ‘시(市)의 제설차량이 몇 대고 인원이 몇 명이니 모든 눈을 치울 수 없다. 자기 집 앞 눈은 자기가 치워야 한다’고 설득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 교수는 “이제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고문변호사를 고용하듯 민간 기상 전문가를 고용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민간 기상전문가를 뼈의 연결을 도와주는 연골에 비유했다.

“기상청의 기상정보를 지역 특수성에 맞게 소화해 예측하는 전문가가 많아야 한다. 눈이 온다고 하면 어느 지역에 제설차를 얼마나 동원해야 하는지, 지금 차가 나가는 게 옳은지, 기다리는 게 옳은지 판단하는 그런 기상 참모들 말이다. 언제 어느 때 물난리가 났는지와 지형에 대해 잘 아는 지역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유럽과 북미는 수십 년 만의 강추위로 얼어붙었다. 우리도 유례없는 한파를 맞았다. ‘미니 빙하기’란 말까지 있다.

“동아일보와 인터뷰했던 앤서니 기든스 경 말(본보 22일자 A5면)처럼 날씨와 기후는 다르다. 기후는 ‘지난 30년간 평균 날씨’다. 올해 한파가 최소 15년간 이어지면 기후학적으로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다시 더워지는 쪽으로 갈 것이라는 게 많은 기후학자의 결론이다. 우리는 추웠지만 평소 영하이던 알래스카와 미국 서부는 때 아니게 더웠다. 호주에선 철로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기록적인 더위가 왔다. 그쪽 사람들은 온난화를 실감하고 있다. 춥고 덥고의 문제가 아니라 온난화로 기후 변동성이 커졌다는 게 문제다.”

그는 목욕탕을 예로 들었다.

“온난화가 일어나는 과정은 목욕탕에서 더운 물 받는 것과 같다. 한꺼번에 수면이 차오르는 게 아니라 물결치면서 더운 상태로 옮겨간다. 가지런하지 않고 들쑥날쑥하다. 온난화가 기후변화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이상 기온도 잦다고 본다.” 오 교수는 “지구가 자연적으로 적응하는 데 적절한 온난화 속도를 시속 100km라 한다면, 지금은 시속 1000km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최근 재해나 이상기후가) 자연의 보복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 것보다는 현대인이 자연에 대해 더 취약해진 거라고 본다. 옛날 같으면 비가 와도 자연스럽게 땅에 스며드는데 지금은 콘크리트가 막고 있다. 아이를 키울 때 방 안에서만 키우면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너무 편하게 살다 보니 작은 변동에도 크게 당한다. 첨단 빌딩에 기계실만 침수돼도 재앙이 오지 않는가. 문제는 우리(인간)이지 자연이 아니다. 개발을 하고 손대는 만큼 그만큼 탈이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급격한 기후변화를 “지구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병”이라고 했다. 선진국은 청정에너지 기술개발 등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가난한 나라들은 피해자이면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 한 나라 안에서도 날씨에 약한 노인이나 에너지 소비에 제한을 받는 저소득층이 기후변화의 취약계층이다.

―그래서 지난번 코펜하겐 회의처럼 각국이 공동 대응하자는 것 아닌가.

“(잠시 침묵한 뒤) 솔직히 비관적이다. 오존층에 구멍을 내는 프레온가스를 사용하지도 말고 생산하지도 말자고 약속한 게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였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대로다. 예측이 틀린 건가. 그게 아니라 200개 되는 나라들이 제대로 안 지킨 것이다. 이산화탄소 감축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앉아서 당해야 하나.

“인류 공동의 위기에 함께 대응해야 하지만 각자 살길도 모색해야 한다. 변화의 시대에는 좀 더 많은 것을 볼 줄 아는 지혜와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서 과학이 필요하고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예상하는 대로 생태계가 변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자연이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지고 따뜻해지면 광합성이 잘되어 나무가 잘 클 거라고 생각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실제로는 광합성 재료가 많으니까 나무들이 게을러져 생존력이 약해졌다. 온난화가 진행되면 알래스카 전나무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해충의 습격 때문에 줄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오 교수는 “지구가 생긴 이래 변화는 계속 있어왔다”면서 “사라지는 것들에 눈길을 주기보다 변화로 말미암아 새로 생기는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제주도만의 특산품이었던 감귤은 지금 거제도에서도 난다. 대구가 주산지였던 사과도 지금 춘천에서 재배되고 있다. 경주에서도 바나나가 난다. 북극곰은 사라져도 돌고래는 서식지가 늘었다. 주목나무는 사라지고 있지만 대나무 참나무는 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면 승자가 되지만 과거에 집착하면 패자가 될 수 있다는 게 기후변화가 주는 교훈이다.”

오 교수는 “인간은 자연 앞에서 불도저를 타고 까불어 대지만 (자연이) 훅 하고 불면 없어지는 힘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상학을 연구할수록 더 느낀다”고 했다. 기상학은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다.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던 제사장을 현대 기상학자에 비유할 수 있을까. 과학자인 그에게 “절대자를 믿느냐”고 물었더니 잠시 동안의 침묵 후 묵직한 목소리로 이런 답이 돌아왔다.

“공부할수록 잠깐 (지구에) 왔다 가는 우리(인간)가 이렇게 난장을 쳐도 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 절대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우연과 신비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오재호 교수는
△서울대 기상학과 졸업 △미국 오리건주립대 박사, 일리노이주립대와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 환경과학자로 일함 △기상청 산하 기상연구소 예보연구실장, 기상학회장 역임 △현재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기상지진기술개발사업단장, 아시아-오세아니아 지구과학총연합회(AOGS) 대기과학분과 학회장, 한국슈퍼컴퓨팅협의회 회장 △‘21세기 한반도 지역기후변화’, ‘기후변동과 이상기상’ 등 70여 편 논문 발표. ‘더워지는 지구 얼어붙는 지구’ ‘인간은 기후를 지배할 수 있을까?’ 등 10여 권 저술 및 번역

▼ 국내 기상시장 규모 美-日 3∼6% 수준 ▼

날씨정보는 단지 불편을 줄이기 위한 게 아니라 그 자체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에 따르면 기상투자는 투자액의 10배 이상을 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기후변동성이 커지면서 기업이나 국가 경영은 날씨정보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농업 건설업 소매업 서비스업 등 기상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산업의 비중이 GDP의 52%나 돼 미국(42%)보다 높다.

2008년 자연재해로 인한 전 지구적 피해액은 1500억 달러로 1950년 이후 사상 세 번째를 기록했다. 최근 10년간(1998∼2007년) 우리나라의 자연재해에 따른 재산피해액은 약 22조3000억 원(2007년 환산 가격 기준)으로 추정된다. 기상 정보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연간 3조5000억 원에 이른다(기상청).

우리나라 기상산업 시장규모는 319억 원(2008년 기준)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1조 원, 일본 5000억 원대에 달한다. 국가별 경제규모를 감안해서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의 기상시장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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