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2모작]금융회사 CEO서 사랑의 집짓기 CEO로… 이창식 한국해비타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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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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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질하는 ‘백발의 카터’에 반해
인생 후반전 ‘러브하우스’와 열애중

이창식 한국해비타트 운영회장은 금융계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비영리민간단체인 한국해비타트 활동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이 회장은 “우리 주변에는 전문지식을 갖춘 은퇴자들이 기여할 부분이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원대연 기자
이창식 한국해비타트 운영회장은 금융계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비영리민간단체인 한국해비타트 활동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이 회장은 “우리 주변에는 전문지식을 갖춘 은퇴자들이 기여할 부분이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원대연 기자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평생 세 차례의 정년을 맞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먼저 직장에서 은퇴하는 ‘고용 정년’이 찾아오고 이어 ‘활동 정년’, 마지막으로 ‘인생 정년’이 다가온다. 반면 은퇴 시기는 빨라져 직장을 떠난 이후의 활동 기간이 10년 이상으로 장기화하고 있다.

은퇴 이후 스스로를 위해 일할지, 사회를 위해 봉사할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무기력 상태에 빠질 위험이 크다. 제2의 정년을 향해 활기차게 뛰는 성공적인 사례와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재무설계 노하우를 격주로 소개한다.》
상근직원 50명 중 10명이 은퇴자 출신… “봉사활동엔 정년이 없어요”


이창식 한국해비타트 운영회장(65)은 은행 보험 증권사 등에서 38년 동안 일해 온 금융인 출신이다. 푸르덴셜투자증권 부회장을 끝으로 금융계를 떠나 한국해비타트 상근이사 겸 운영회장으로 현역 시절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서 비영리민간단체(NPO) CEO로 변신한 대표적인 ‘인생 2모작’ 사례라고 할 만하다.

이 회장은 한국해비타트가 발족한 1990년대 초반부터 자원봉사자 겸 후원자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집을 새로 지어주거나 수리해주는 해비타트 한국운동본부 설립을 추진하던 이들과의 친분이 참여 계기가 된 셈이다. 그는 “초기에 해비타트 운동을 준비하던 많은 이들이 나와 사회적, 신앙적으로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1997년부터 이사로 활동했고 2005년부터는 상임이사 겸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현역 시절 꾸준하게 노력과 시간, 후원금을 지원한 것이 한국해비타트 회장이 될 수 있었던 토대였던 듯하다고 자평했다. 또 한국해비타트에 상근 회장이 필요하던 시점에 현직에서 은퇴해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진 점도 결정적인 요소였다. 특히 그는 수탁액이 30조 원이 넘었던 금융회사 CEO 경험이 한국해비타트를 경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해비타트는 전국 10개 지회에 상근직원 수가 50명이 넘고 1년에 1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오간다. 건축은 물론 사후 관리와 자금 회수, 기부금 관리, 홍보업무 등이 모두 경영활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한국해비타트는 하는 일로 보면 건설회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이 조직을 유지,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한국해비타트에는 자신 말고도 시중은행에서 준법감시인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했거나 건설회사 임원을 지냈던 이들도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각기 현역 시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준법감시(컴플라이언스)와 건축 총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해비타트 상근직원 50명 가운데 은퇴자 출신은 1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회장은 은퇴자들이 한국해비타트 같은 NPO에 기여할 부분이 많다며 지난해 11월의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당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주최하는 국제해비타트의 봉사 프로그램인 ‘지미 & 로절린 카터 워크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메콩 강 유역 5개국(중국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주택 174채를 짓는 사업이었다. 이 회장은 칠순, 팔순의 노인 100여 명이 카터 전 대통령과 동행하며 일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부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힘이 부치지 않는 한 NPO 활동에는 정년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많은 NPO가 회계 인사 금융 법률 등의 전문가를 채용해야 하지만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며 “이런 분야에서 일하다 은퇴한 자원봉사자들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해비타트 활동을 하면서 집이 없어 불안에 떨던 가족이 안정을 되찾고 자녀 교육과 건강 등도 뚜렷하게 개선되는 것을 수없이 지켜봤다. 또 땀 흘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자원봉사자 자신의 삶도 바뀌는 걸 체험했다. 이 회장은 “한국의 해비타트 운동은 할 일이 너무 많다”며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이창식 회장은 ▼

1984∼1991 한국자동차보험 이사
1991∼1992 동부증권 상무
1992 한국해비타트 창립 참여
1992∼1993 동부그룹 경영조정본부 전무
1993∼1995 한국자동차보험 전무
1995∼1996 동부증권 전무, 부사장
1997∼2004 국민투자신탁증권 대표이사 사장
1997∼2005 한국해비타트 이사
2004∼2005 푸르덴셜투자증권 부회장
2005∼ 한국해비타트 상임이사 겸 운영회장
2009∼ 해외원조단체협의회 부회장
■ 강창희 소장의 한마디


이창식 회장의 변신은 멋진 제2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세상에 도움을 주고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없다. 금융인으로 일하던 때부터 열성적으로 NPO 활동을 했기에 은퇴 후 성공적인 삶을 이끌고 있다고 본다. 이 회장은 현역 시절 남다른 재테크 방법을 이용하기보다 절약하고 남은 돈을 펀드, 연금, 보험 등에 투자하는 평범한 투자를 했다고 한다. 가장 바람직한 은퇴 설계는 자신의 힘으로 일하면서 돈도 버는 것이다. 이 회장이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강창희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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