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살육현장엔 침묵만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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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지도 알려고도 하지마라”

‘마약과의 전쟁’ 3년이 지났건만
31개 주중 17곳 마약조직이 통치
주민들 이젠 정부군마저 못믿어


“멕시코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진실을 아는 것은 더 위험하다.”

멕시코 중북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치와와 주 누에보카사스그란데스 시의 라디오 뉴스쇼 진행자 페르난도 디아스 산타나 씨는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 12월호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멕시코 주요 마약조직인 후아레스 카르텔의 세력권인 치와와 주에서 언론은 ‘객관적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객관적’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경찰과 시의 발표만을 보도하는 데 그친다. 같은 주 후아레스 시에서는 지난해 11월 이 조직과 주 검찰이 연루된 범죄를 기사화한 언론인 아르만도 로드리게스 씨가 살해됐다. 산타나 씨는 “마약조직을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가지만 않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고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3년이 됐지만 끝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군 4만5000명과 경찰 5000여 명을 투입했지만 3년간 1만6000명의 희생자를 냈을 뿐이다. 애틀랜틱은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 이래 최악의 살육”이라고 전했다. 칼데론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일부 지역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도 있다”며 후아레스 시를 지목했다. 이외에 마약을 미국으로 옮기는 주요 통로인 멕시코 북부 국경지대의 일부 마을은 사실상 마약조직이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지난달 찾은 멕시코 동북부 타마울리파스 주 국경도시 레이노사는 마약조직 세타스의 ‘소(小)왕국’이었다. 주요 마약조직 걸프 카르텔의 용병부대로 출발해 하나의 조직으로 성장한 세타스는 전직 군 특수부대 출신들로 구성됐다. 중무장한 조직원만 4000명.

멕시코 정부는 타마울리파스 주가 평화와 안정을 되찾았다고 밝혔지만 실제 주민에게는 ‘물정 모르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레이노사 인권단체의 레베카 로드리게스 씨는 “세타스는 테러와 공포로 사람들의 모든 일상을 조용히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경찰서장 두 명은 올해 처참하게 살해됐다.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마약 거래로 한 해 수십억 달러를 벌면서 노점상으로부터 자릿세 명목으로 매출 100페소(약 9000원)당 10센트(약 110원)를 뜯어내고 있다. 세타스의 ‘두건을 쓰고 큰 낫을 든 해골’ 표지는 거리를 다니는 차나 건물 벽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국경지대 마을의 더 큰 문제는 마약조직을 소탕하러 온 정부군마저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마약조직 소탕을 빌미로 한 정부군의 납치, 고문, 불법연행, 살인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마약조직은 ‘반(反)정부군’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정부군이 마약조직 간 다툼에서 어느 한 조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식별할 능력을 잃은 주민은 그저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고’ 있을 뿐이다.

유엔과 세계은행에서 법경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에드가르도 부스카글리아 교수(법학)는 최근 보고서에서 “마약조직이 정부, 법원, 경찰에까지 침투해 있는 멕시코는 전체 31개 주 가운데 17개 주가 사실상 ‘마약공화국’”이라며 “멕시코는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약조직이 정부군과 대등하게 맞서는 멕시코 상황은 ‘국가만이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적으로 갖는다’는 국가의 근본 토대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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