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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기자의 눈]‘친일사전’ 보고대회의 “대선 다시하자” 주장

입력 2009-11-10 03:00업데이트 2009-11-10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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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8일 낮 12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 보고대회가 열릴 예정이던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 정문 앞에는 ‘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등 20여 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친일사전 발간은)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 힘든 민족문제연구소가 국론을 분열하려 내놓은 정파적 모략”이라 비판하고 연구소의 해체를 촉구했다. 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위암 장지연 등 이른바 ‘친일인사’ 4390명의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에는 독립유공자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한 시민은 “단편적 사실로 국가의 지도자들을 친일파로 매도해 무엇을 얻겠다는 얘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와 연구소 사이의 충돌 등을 우려한 숙명여대 측이 연구소에 대관 취소를 통보해 보고대회는 인근 효창공원 내 백범 김구 선생 묘소로 옮겨져 열렸다.

#장면 2. 김구 선생 묘소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보고대회에서 연구소 측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등 간단한 식순에 이어 총 3권으로 된 친일인명사전을 김구 선생의 묘 앞에 올려놓았다. 김병상 연구소 이사장은 “일제와 손을 잡은 (사람들의) 피가 뒤섞여 우리 민족의 순수함이 파괴되고 이 나라를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임헌영 연구소장은 “사전이 빛을 받으면 앞으로 우리 민족이 빛을 받고, 탄압을 받으면 우리 민족도 탄압받는 것”이라고도 했다. 보고대회를 보러 온 사람들도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았다. “친일파 후손들은 잘 먹고 잘사는데 독립군 자손은 훌륭한 조상을 둔 업보 탓에 가난하고 핍박받으며 산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친일파 척결을 제대로 못해 대한민국 현대사가 오욕의 역사로 전락했다”…. 사실과 주장, 의견과 믿음이 구분되지 않은 말의 홍수 속에서 냉정한 이성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사안의 본질과 무관한 주장을 펼치는 집회 참가자들도 많았다. 친일문제와 전혀 무관한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하자’는 피켓을 들고 나온 이도 있었다. ‘미디어 악법을 저지하자’며 최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비난하는 피켓도 눈에 띄었다. ‘친일파와 재벌, 갑부 등은 현 정부가 돕는 상위 1% 국민’이라며 국민 편 가르기와 정권 성토의 기회로 삼으려는 단체도 있었다. 이 단체는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 때부터 집회 현장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단체였다. 이 자리가 과연 학술 연구의 성과물을 발표하는 곳인지, 정치 집회 장소인지 분위기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논란이 있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조사는 하되 차분하게 진행되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과 관점이 곧 ‘진보’와 ‘정의’라는 확신으로 4000명이 넘는 인물에게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은 연구소의 방법이 역사를 통찰하는 진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 이번 일을 반정부 시위로 연결하며 우리 사회를 다시 갈등구조로 몰고 가려는 일부 세력의 행태는 더욱 우려스럽다.

우정열 사회부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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