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팔레스타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혼혈 아랍인, 잃어버린 정체성 찾기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 유산/사하르 칼리파 지음·송경숙 옮김/414쪽·1만3000원·아시아

팔레스타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이나는 반쪽짜리 미국인이다. 브루클린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영주권을 얻고 난 뒤 자이나의 어머니와 헤어지고 재혼한다.

특유의 너스레로 아라비아의 사막과 낙타, 야자열매와 향목, 메카 등의 이국적인 이야기를 떠벌리며 수완 좋게 장사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이나의 유년기는 그럭저럭 행복했다. 열다섯에 임신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딸들이 “양초처럼 밝고 깨끗하게 알라와 사도의 법도대로” 자라길 원했던 아버지는 분노와 모욕감, 그리고 절망에 사로잡혀 칼을 들고 자이나를 쫓아 나오고 그녀는 그 길로 워싱턴에 사는 할머니 집으로 옮겨간 뒤 아버지와 연락을 끊는다.

팔레스타인 출신 작가이자 여성 인권운동가이기도 한 사하르 칼리파는 이민자로서 두 문화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현실과 여성의 정체성 문제를 함께 짚어냈다. 자이나는 미국에서 성공한 연구원으로 성장하지만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은 욕망으로 언제나 결핍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팔레스타인의 고향에서 임종을 맞으려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요르단 강 서안에 있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간다.

자이나는 그곳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팔레스타인 고유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배우고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해 간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고 가부장적인 이슬람 사회 속에서 억압받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목도하게 되면서 그는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 민족을 둘러싼 이야기지만 보편적이면서도 흡인력 있는 서사 덕분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