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불광동 방식, 고베 방식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6분


서울 은평구 불광동성당은 콘크리트 빌딩숲 속의 ‘붉은 쉼터’였다. 기도하는 손을 닮은 공간 위에 따뜻한 느낌의 붉은 벽돌을 촘촘히 감싼 건물. 서울 중구의 경동교회, 경남 마산시의 양덕성당과 함께 건축가 고(故) 김수근이 남긴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혔다.

하지만 18일 오전 찾아가 본 이 성당은 재개발 아파트 공사장 타워크레인들에 위태롭게 포위된 벼랑 끝 유물이 돼 있었다. 지난해 3월 착공한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성당 북측의 벽돌담과 인접한 땅이 둘레 72m, 깊이 12m로 파헤쳐진 것이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재개발 아파트를 세울 평지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경사지를 깎아냈다. 그리고 땅의 절단면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성당 벽돌담에 바짝 붙여 임시 흙막이벽을 설치했다.

이런 공사의 충격은 24년 된 성당 건물 곳곳에 드러났다. 붉은 벽돌을 깔아 덮은 뒤뜰 바닥은 드문드문 갈라지고 내려앉아 지진을 겪은 듯 울퉁불퉁해졌다. 김수근 스타일의 특징적 요소 중 하나인 벽돌담은 붕괴가 걱정돼 철제 빔을 깁스처럼 붙여 놨다.

한용 불광동성당 성전보존관리위원회장은 “땅을 파는 기초공사 과정에서 지하수가 인근 용지로 새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물막이벽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성당 아래 지반이 약해져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돼 뒤뜰과 기도실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태석 현대건설 홍보부장은 “성당에서 올해 2월 냈던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서울 서부지방법원의 판결대로 물막이벽을 설치하고 공사를 진행했다”며 “훼손된 성당 담벼락 등은 공사를 완료한 뒤 보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은 지 오래돼 살기 불편해진 공간을 재개발하는 사업은 도시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건물이나 환경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불광동성당 뒤에 아파트를 짓기 위해 반드시 지금처럼 땅을 깊이 파내야만 했을까.

일본 고베의 ‘롯코 집합주택’은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해주는 사례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 대규모 공동주택은 땅의 가파른 경사를 거스르지 않고 건물에 그대로 받아냈다. 경사면을 따라 차곡차곡 쌓아 올리듯 건물을 배치한 뒤 앞으로 튀어나온 아랫집의 평지붕을 윗집 테라스로 썼다. 주어진 환경에 맞게 맵시와 편의를 살린 이 건물은 지역을 상징하는 명소가 됐다.

도시의 재개발은 끝없이 벌어진다. 그때마다 이 땅의 경사지는 당연한 듯 깊이 파헤쳐진다. 이런 관행이 계속되는 한 또 다른 불광동성당을 수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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