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효원]국민 없이는 검찰도 없다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검찰 고위 간부 인사가 10일 단행돼 두 달 이상 지속된 검찰사상 초유의 지휘부 공백사태가 일단락됐다. 지금쯤 1700여 명의 대한민국 검사들은 무더운 여름 내내 어둡고도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찬 앞날이 기다린다고 느끼지는 않을 듯싶다.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고, 곧이어 검사 인사가 기다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검찰 앞에는 크고 무거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김준규 검찰총장 내정자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듯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로 거듭 태어나는 일이다.

막강한 권력 정당하게 수행을

검사는 범죄에 관한 진실을 규명하고 범인을 처벌함으로써 국가공동체를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로서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검사 개개인을 독립된 국가행정관청으로 인정하고, 준사법기관의 지위와 그에 따르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한 것도 임무를 정당하게 수행하라는 뜻이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아니 받아야 하는 것은 검찰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를 통해 수사방식과 도덕성에서 큰 상처를 입은 검찰은 다음 네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

첫째,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고, 균형감각을 가지고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나는 대부분의 검사가 정의감과 도덕성을 유지하면서 격무를 잘 처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은 검찰이 표적수사, 짜맞추기수사, 청탁수사, 과잉수사를 하고,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인식한다. 검찰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여 행여 흐트러뜨려졌을지 모를 조직을 안정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국민의 신뢰는 하나의 정치적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이 일순간에 무너지지도 않는다.

둘째, 검사 개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검찰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의해 개인보다 조직의 역량을 강조하는 특성을 지닌다. 지금은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조직의 단결력보다 개개인 능력의 총합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이다. 검사 개개인의 이익이 검찰조직의 이익이 되도록 만들어 놓으면 검찰의 역량은 저절로 강화된다.

셋째, 인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적재적소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대부분의 검사가 수긍할 인사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그동안 검찰의 인사 시스템이 객관화되고 공정해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 또 “검사들은 모이면 인사 이야기를 한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사 때마다 흘러나오는 가담항설(街談巷說)은 내부분열과 조직력 약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그릇된 관행도 과감히 고쳐야

넷째, 그릇된 관행을 과감히 고쳐야 한다. 정치적 사건의 수사방식이나 수사결과의 언론브리핑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또한 지식과 경륜이 풍부한 검찰 간부가 사법연수원 후배나 동기가 승진하게 되면 스스로 물러나는 관행도 달라져야 한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적인 손실이므로 평생검사로 명예롭게 근무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은 검찰사상 최고의 위기사태를 여러 번 봤다. 그때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검찰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직 국민의 기대와 애정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하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가장 안전한 길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격언은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한 노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효원 서울대 법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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