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1995~96년 1년반새 100만명 굶어죽어”

  • 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했던 1997년 북한 어린이들이 배급된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했던 1997년 북한 어린이들이 배급된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황씨가 확인한 ‘아사’ 실태

양곡생산 필요량의 절반 안돼… 덜 여문 옥수수 10만t 따먹어

“1995년 하반기에만 당원 5만 명을 비롯해 북한 주민 50만 명이 굶어 죽었으며 1996년 11월 중순까지 모두 100만 명이 아사(餓死)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는 7일 1997년 탈북 직전 북한의 처참한 실상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황 전 비서는 답답한 마음에 당시 북한이 양곡을 얼마나 생산했는지 당 비서들을 통해 확인했다. 당시 생산된 양곡은 210만 t에 불과했다. 그것도 손질한 정곡이 아니라 겉껍질을 벗겨 내지 않은 겉곡식의 무게였다. 이는 북한 주민이 굶지 않을 안정적인 생산량인 450만 t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이었다. 그는 급히 당시 홍성남 정무원 총리대리에게 전화를 걸었고 북한 내각은 당시 양곡 220만 t을 생산한 것으로 파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왜 생산량 수치에 차이가 나는지를 묻는 황 전 비서에게 홍성남은 “강냉이(옥수수)가 여물기 전에 따먹은 것이 10만 t 정도 된다”라고 답했다. 평양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지방에 출장을 다녀온 모 중앙당 부부장은 “아침에 오는데 기차역마다 (굶어 죽은) 시체가 쫙 깔려 있었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주민들은 공장의 기계와 부속품, 원료, 건축에 사용되는 기중기까지 해체해 시장으로 들고 나가 팔았다. 황 전 비서는 공장마다 현직 군인으로 구성된 교도대가 지키고 있었지만 교도대들은 “우리 가족이 다 굶어 죽는데 당신이 책임질 거냐”는 주민들의 절규를 듣고 이런 ‘불법 행위’를 용인했다고 전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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