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출하는 한글, 나라 안에선 오염이 심해지니

  • 입력 2009년 8월 7일 02시 59분


한글이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의 공식문자로 처음 수출됐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주(州) 부퉁 섬 바우바우 시(市)는 문자가 없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찌아찌아어(語)를 표기하기 위해 한글을 도입했다. 훈민정음학회가 작년 찌아찌아족(族)에게 과학적 표음문자인 한글을 전파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한글학습 교과서를 만들어 지난달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손은 찌아찌아어로 ‘을리마’, 발은 ‘까께’, 우산은 ‘빠우’로 쓴다. 찌아찌아어의 어떤 발음도 표기가 가능한 한글의 우수성이 해외에서 확인된 것이다.

지구상에는 4000여 종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자로 적을 수 있는 언어는 40여 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한글은 ‘ㄱ ㄴ ㅁ ㅅ ㅇ’ 등 다섯 개의 기본자음에 소리가 거세짐에 따라 하나씩 획을 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귀신의 소리도 흉내 낼 수 있을 만큼’ 가장 뛰어난 음소(音素)문자로 꼽힌다. 영어처럼 문자와 발음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구 6만여 명의 찌아찌아족은 고유 언어와 문화,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데도 문자가 없어 언어는 물론이고 문화와 전통까지 잃어가고 있었다. 훈민정음학회장인 김주원 서울대 교수는 “한글이 그들의 언어와 문화, 전통을 살려낸다면 인류 문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반도 밖에 ‘한글 쓰는 섬’이 생기는 것을 계기로 한글의 수출이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정부가 앞장서 한글의 세계화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글 보급에 힘써온 한글 학계를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글은 정작 국내에선 함부로 취급받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외계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엉터리 표기가 난무한다. 맞춤법이나 표기법을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몰라서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성인도 적지 않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최근 FM라디오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방송 진행자가 ‘쓰리퍼살(30살)’ ‘다이하다(끝내다)’처럼 말도 안 되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우리말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유네스코가 199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을 만큼 우수한 한글이다. 우리 스스로 소중하고 아름답게 갈고 다듬어야 해외에도 당당하게 전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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