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성호]광화문광장 안팎을 얘기로 엮자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7분


동아시아의 도시는 우주의 질서를 건물과 도로를 통해 상징한다. 서양의 도시가 생산물의 집적지로서 기능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당나라의 장안, 발해의 상경, 그리고 서울의 세종로(육조앞, 혹은 육조거리)는 우주의 질서를 세우는 최초의 축에 해당한다. 서울은 이 축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종묘를, 우측에는 사직단을 세우면서 시작된다. 그래서 서울을 걷는다는 것은 이 우주의 질서 속을 걷는다는 말과 같다. 특히 서울은 건물과 도로뿐만이 아니라 동서남북의 산과 강, 크고 작은 하천이 모여 가히 도시 자체가 하나의 상징으로 들려있다. 신라의 경주가 불국토를 이루었던 것처럼, 서울은 14세기 동아시아의 우주관을 상징한다.

그리고 지금, 그 우주는 사라졌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우주는 그 전 시대의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혼돈과 복잡함으로 가득 찬 모순의 우주다. 그래서 현대 도시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질서정연한 세계가 사라지고 각각의 중심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여전히 비행기의 길이 고대 양모 상인의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처럼, 육조거리는 여전히 현대도시 서울의 중심에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었다던 운종가(종로)도 여전히 육조거리(세종로)와 만나고 있는 그 자리 그대로다.

그런데 이상하다. 600년 동안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이 시장에 오래된 가게가 하나도 없다. 서울은 이상하게 새것이다. 항상 그렇다. 국수를 잘 마는 오래된 가게도 없고, 그냥 오래 됐다는 역사 하나로 손님들을 기죽게 하는 찻집 하나도 없다. 웬일인가 싶다가도 우리가 겪은 절대빈곤의 시절을 생각하면 사실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 왔다. 장인정신을 장인 자본주의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여기까지 일그러진 모습으로 왔다. 그랬다는 것은 늘 부산하게 실내장식을 하고 새로운 간판을 다는 종로의 가게들이 증명하고 있다. 도시는 부산스럽고, 복잡하다. 복잡하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떤 복잡함인가 하는 데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복잡함의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한마디로, 복잡함이 짜증을 유발하는 도시는 나쁜 도시다. 반대로 이 복잡함이 활력이 되는 도시는 좋은 도시다. 그리고 반드시 그 활력에는 이야기가 존재해야 한다. 한번 불꽃처럼 피었다 사그라지는 그런 활력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져야 한다.

광화문광장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는 풍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화문광장 안에서만 이야기되어서는 안 된다. 이야기를 광화문광장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가 들어오고, 다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광화문광장보다 광화문광장 바깥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종로와 남대문 시장, 을지로, 청계천의 가게들이 탄탄하게 이 이야기를 지켜줘야 한다. 광화문광장이 섬처럼 남아 있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광화문광장은 북악이라는 거대한 상징에서 뻗어 나온 축이기에 시설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리 손댈 것이 없다. 문제는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종로, 서울광장, 그리고 주변의 시장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다. 이 이야기를 서로 연결하지 못하면 광화문광장은 차량 통행으로 둘러싸인 섬이 될 것이다. 축제를 끌어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의 이야기를 끌어오자는 말이다. 이 일상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누가 시켜서, 자금을 지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사회가 어떤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 질문의 대답이 광화문광장의 진짜 이야기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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