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판사’ 꿈꾸는 이주영 양

  • 입력 2009년 7월 21일 02시 57분


김영란 대법관(왼쪽)과 판사를 꿈꾸는 중학교 2학년 이주영 양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내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 대법원장 흉상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양은 “나중에 커서 법관이 돼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고 밝혔다. 변영욱  기자
김영란 대법관(왼쪽)과 판사를 꿈꾸는 중학교 2학년 이주영 양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내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 대법원장 흉상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양은 “나중에 커서 법관이 돼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고 밝혔다. 변영욱 기자
“거친 손 어머니 위해… 어려운 사람 법으로 돕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 사는 중학교 2학년 이주영이라고 합니다. 전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연세가 많으시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몸이 편찮으셨기 때문에 저희 집은 과일가게를 하는 어머니께서 홀로 책임을 지고 계세요. 어머니는 명절을 빼고는 하루도 과일가게를 쉬는 법이 없을 정도로 열심이시죠.

힘든 내색 없이 가정을 꾸려온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전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법조인이 되고 싶습니다. 판사는 어렸을 때부터 제 한결같은 꿈이었어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법의 잣대로 벌을 줄 수도 있지만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법으로 도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할머니와 아버지를 운동시켜 드릴 겸 산책을 나섰다가 이따금 근처 지방법원에서 늦은 시간 퇴근하는 판사들의 모습을 봤는데 그렇게 멋질 수가 없더라고요.

물론 김영란 대법관님 같은 법관이 되는 길이 결코 쉽지는 않겠죠?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어떨 때에는 제 뜻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아 실망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꿈은 있지만 솔직히 아직은 막막합니다. 김영란 대법관님을 만나 충고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법관이 되고 싶은 주영이 올림.

▼“남의 상황에 공감하는 능력 키우렴”▼
주영이 손잡은 김영란 대법관
균형감각-객관성이 판사에게 중요한 자질
힘들땐 이렇게 읊조려봐“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마 주영이가 지금까지 여기 대법관 집무실에 들어온 사람 중 가장 어린 친구일 것 같네.”

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올라온 이주영 양(14)이 김영란 대법관(53·여)을 만나기 위해 난생 처음 대법원에 들어섰다.

이 양의 역할모델인 김 대법관은 1978년 사법시험(20회)에 합격한 뒤 20여 년의 판사 생활을 거쳐 2004년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대법관 자리에 올랐다. 이 양은 처음에는 긴장한 때문인지 집에서 준비해 온 질문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쑥스러운 순간도 잠시. 온화한 인상의 김 대법관에게 편안해진 이 양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모범생답게 김 대법관의 한마디 한마디를 꼼꼼히 메모하기 시작했다.

“내 경우에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딱 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 당시만 해도 여자 법조인도 그렇고, 특히 판사가 드물던 시대였지. 그런데 주영이는 법관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거니?”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을 법을 적용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판사 아닌가요? 법으로 벌도 주고 또 힘든 상황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의료사고로 어렸을 적부터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보면서 무언가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직업을 찾고 싶었거든요.”

“그래, 판사가 그럴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지.” 법관이 돼 사회적 약자를 돕고 싶다는 이 양의 똑 부러진 대답에 김 대법관도 표정이 진지해졌다. 김 대법관 자신도 ‘왕따 피해도 보상받을 수 있다’ 등 약자를 배려하려는 개혁적 판결들로 화제를 만들었다.

“판사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은 균형감각과 객관성인데 내가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다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공감능력이야. 최근 소니아 소토마요르라는 여성이 히스패닉계로는 첫 번째로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에 지명됐는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분을 지명한 이유로 ‘공감능력’을 꼽았단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이 양의 현실적 고민인 학업으로 옮아갔다. 이 양은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모범생이란 평을 듣고 있다. “판사가 되려면 공부를 정말 잘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가끔은 뜻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아 고민도 돼요.”

“나도 고교 시절 영어 발음 때문에 열등감이 심했어. 영어 말하기 경시대회를 앞두고 스트레스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픈 적도 있었거든. 하지만 영문서적을 읽으며 열등감을 극복해 나갔지. 독서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배경지식이 생기는 것 같아.”

이 양의 아버지는 이 양이 태어나기도 전에 뇌출혈 치료 중 의료사고로 거의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연로하시다 보니 어머니가 과일장사를 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런 이 양에게 김 대법관은 자신만의 ‘주문’을 소개했다.

“주영이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나도 판사가 된 후엔 좀 힘들었어. 여자 판사가 10명도 안 되던 때였는데 남자보다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니까 밖에서 일하랴, 또 집에선 아이들 키우랴 아주 힘들었거든.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야. 나중엔 이것도 다 지나갈 거란 생각으로 침착하게 대응하면 결국엔 고비도 넘어간단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양도 혼잣말로 되뇌었다.

김 대법관은 어머니의 거친 손을 볼 때마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는 이 양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래, 지금은 고단하겠지만 편안하고 안락하되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는 삶보다 꿈이 있는 주영이 삶이 더 의미 있다는 걸 잊지 마라. 고민거리 있으면 e메일로 연락해 줘.”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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