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원목]기업형 슈퍼, 규제 대신 지역공헌 유도를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5분


‘대기업 슈퍼마켓(SSM·Super Supermarket)’에 대한 규제의 타당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대기업 슈퍼마켓은 대형마트보다는 작지만 구멍가게보다는 큰 기업형 슈퍼다. 대형 소매점이 동네 골목길까지 진출하여 구멍가게의 상권을 잠식해버릴 상황을 걱정하는 영세상인들은 자신들이 참여하여 SSM 입점 심사를 할 수 있는 허가제 도입을 요청하고 있다. 진보계열의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합세하여 SSM의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일 지정, 품목 제한 등의 고강도 규제방안을 입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SSM을 설치하려는 기업과 유통업체는 SSM을 규제하면 값싸고 좋은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할 뿐 아니라 경쟁관계에 있는 TV홈쇼핑, 인터넷쇼핑에만 혜택이 돌아가므로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한다. 정부는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또다시 진보와 보수이념이 충돌하는 이슈를 놓고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소매업을 이미 국제적으로 개방해놓은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는 이슈이므로 국내 정치적 고려 이외의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한 문제이다. 국제규범 위반 가능성은 필수적인 검토사항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은 이미 개방된 분야에 있어서 외국기업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설정하는 식의 규제를 도입하는 제도를 금지한다. 앞으로 외국기업이 한국에 SSM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차별이 가해지는 식으로 허가요건을 규정하거나 영업형태를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비차별 원칙과는 별도로 WTO 협정은 서비스업체의 수, 거래액수, 영업량, 고용인의 수에 대한 수량적 제한을 설정하는 방안을 금지한다. 영세상인을 보호하거나 지역주민 보호 목적의 수량적 제한일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내외국인이 설립한 SSM에 대해 차별 없이 규제를 적용하더라도 영업시간이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여 영업량을 제한하면 이는 수량적 제한 금지조항을 위반하는 셈이 된다.

WTO 협정은 또한 서비스업자의 자격과 허가 요건을 부과하는 데 있어 서비스 질을 유지하기 위한 정도보다 과도한 제한을 가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허가제를 도입하고 운영함에 있어 지역 상권과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SSM의 진출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이런 조항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모든 것이 경쟁하는 시대에, 이미 개방된 분야에서 경쟁을 구조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보호의 효과를 거두려는 발상은 타당하지 않다. TV나 온라인을 통한 식료품 구매까지 가능한 상황에서 이런 보호정책은 실효적이지도 않다. 결국, 영업 제한과 허가제 도입을 통한 진입장벽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지역사회와 SSM이 상생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SSM이 벌어들인 이익의 일정 부분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쓰도록 하는 한편, 피해 영세상인에 대한 세제혜택을 확대하거나 교육비 지원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SSM이 창출하는 일자리 중 일정부분을 해당 지역사회 내에서 상업 종사 경험자로 충원하도록 하는 내용도 장기적 해결방안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그래야 소비자도 식료품 구매를 위해 주말마다 멀리 떨어진 대형마트 앞에서 주차전쟁을 겪는 불편을 덜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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