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형선]건보료율 올려 보장 확대를

  • 입력 2009년 7월 4일 02시 52분


동아일보에 전 국민 건강보험 20년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건강보험 덕분에 모든 국민이 의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반면 선진국에 비해서는 환자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큰 기업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증을 발급하기 시작한 때가 1977년이다. 1989년에는 자영업자도 의료보험증을 갖게 됐다. 전 국민 건강보험이다. 그 뒤 20년이 지나서 국민 한 사람이 1년간 의사를 방문하는 횟수는 평균 12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회보다 훨씬 높다. 우리의 건강보험은 세계가 부러워한다. 얼마 전 우간다와 캄보디아의 의료보장 제도 구축에 대해 조언해 주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의 초청을 받은 일이 있다.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이 짧은 기간 안에 보편적 건강보험제도까지 이룬 사실에 참석자 모두 경의와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WHO는 사전지불비율(prepayment rate)을 높이도록 권고한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환자는 의료 이용 시 병의원에 돈을 낸다. 환자 본인 부담이다. 하지만 병의원은 건보공단에서 추가적으로 돈을 받는다. 이는 대부분 국민이 평상시에 내는 건강보험료를 재원으로 한다. 병에 걸리기 이전에 미리 지불한다는 뜻으로 보험료나 세금을 사전지불 재원이라고 한다. 왜 이것이 높아야 한다는 말인가?

첫째, 같은 수준의 의료비라면 사전지불이 클수록 의료 이용 시의 부담이 줄어든다. 사전지불의 크기가 바로 보장성 수준이 된다. 사전지불 재원은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를 가진다. 사전지불은 소득 재분배 효과도 가진다. 둘째, 사전지불이 크면 전체 의료비 규모가 억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전지불이 커지면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조절할 필요성과 능력이 동시에 커진다. 의료라고 하는 재화는 속성상 공공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자유진료를 강조하는 미국의 천정부지 의료수가가 얼마나 국민을 멍들게 하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보장의 수준, 특히 고액진료비를 해결하는 수준이 미약하다. 일부의 고액 서비스는 급여 대상에서 제외된다. 선택진료비라고 해서 큰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는 대부분 추가 비용을 낸다. 간병 부담도 환자가 진다. 서구 국가에서 배우자도 면회시간에만 환자를 볼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의 이런 과부담은 저소득층에게 의료이용 포기와 가계파탄 중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전 국민 건강보험을 무색하게 하는 부끄러운 상황이다.

우리의 건강보험료는 소득의 5.08%로 사회보험제도를 가진 국가에 비해 낮다. 독일과 프랑스가 14% 수준이고 일본과 대만만 해도 각각 8.5%, 7.7%이다. 건강보험료가 낮다보니 국민의료비 중 공공재원의 비중이 55%로 OECD 평균 73%에 훨씬 못 미친다. 적게 걷어서 조금만 보장하는 방식이다. 사전지불비율이 낮은 시스템이다.

건강보험을 계속 감기보험에 머물게 할 것인가? 치료비 부족으로 가계가 거덜 나는 비극을 계속 방치할 것인가? 질병은 언제 내 일이 될지 모른다. 건강보험료를 올리는 인기 없는 정책은 정치인이 선택하기 힘들다. 서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 건강보험료는 여유 있는 계층이 더 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보험료율은 가입자, 의료공급자, 공익의 3자협의체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이들 사이에 공감대만 형성되면 정치인에 의존 않고 의료보장 확대가 가능하다. 내년 보험료율을 결정하는 금년 말을 주시하자.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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